바람이 불면 눈을 기다린다

가슴속 깊은 곳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추억을 바람에 실어 온 날

by 멈춤의 일기장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강풍 주의보가 내려
창밖의 나무들이 하루 종일 몸을 흔든다.
문을 꼭 닫아두었는데도
어디선가 바람 소리가 스며들어
집 안까지 서늘해진다.


바람이 불고 날이 차가워지는 날이면
나는 눈이 내리기를 기다리곤 한다.
이유를 또렷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가슴 깊은 곳에 넓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앞마당에는
측백나무와 탱자나무로 된 울타리가 있었고,
뒷마당에는
장 냄새가 풍기던 장독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겨울이면
집 앞 텃밭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농사를 지으셨기에
추운 겨울 아침의 놀이터는
늘 비닐하우스 안이었다.


뒷마당의 장독대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눈이 오는 날이면
장독대 뚜껑 위로
눈이 소복이 쌓였다.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은 채
빨간 내복 바람으로 마당을 서성이며
눈을 한 손 가득 모아 먹어보기도 하고,
꽁꽁 뭉쳐 던져보기도 했다.
그러다 감기 든다고
부모님께 꾸중도 참 많이 들었다.


추웠지만,
참 따뜻했던 날들이었다.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아련한 아픔이 몰려오고,
나는 한없이 그리움 속으로 던져진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애틋한 기억이
내리는 눈처럼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여간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눈이 보고 싶다.
눈이 많이 오는 곳에서
살고 싶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겨울에도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나는 해마다 겨울이 되면
남편에게 투정을 부린다.
눈이 보고 싶다고,
눈이 내리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그래도 내 남편에게는
참 감사하다.
늙어가는 아내의 투정을
그저 너털웃음으로 받아 넘겨준다.
해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면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늘 웃어준다.


그 너털웃음 덕분에
이번 겨울도 눈을 보지 못한 채
지나가게 될 것 같다.

눈을 보지 못해 더 그립고,
만지지 못해 더 아쉽지만
그 그리움마저도
가슴속에서 오래 남아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임을 안다.


이 겨울의 끝에서도
나는 여전히
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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