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간을 함께 걷다.
어릴 적, 고인이 되신 김동길 교수님께서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쓰신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너도 나도 가난하던 시절, 연탄 한 장과 쌀 한 되를 빈번하게 외상으로 하시면서도 한 번도 비굴해하지 않으셨다는 글이었다.
지금은 비록 외상이지만, 떼어먹지 않고 반드시 갚을 거라고 큰소리치셨다고 한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자식을 따뜻하게 재우고 배불리 먹이려는 어머니의 마음이란 저런 것이구나’ 하고 가슴이 먹먹해졌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가난하고 살기 힘든 날들 속에서도 책임을 끝까지 붙드는 일이구나.’
그때의 나는 어머니라는 이름이 얼마나 단단한지, 글을 통해 처음 배웠다.
요즘 나는 내 남편의 어머니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한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늘 술에 취해 있던 남편을 대신해 바깥일과 안살림을 도맡아 하며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킨 그 여인.
나와는 살갑지 못하시지만, 세 아들이라면 끔찍이도 아끼시는 그 여인.
저녁 식사 시간, 아들은 어머니 앞에 잘게 자른 고기를 앞접시에 올려 드리고 밥과 국을 챙겨 드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식이 어렸을 적 ‘어머니’라는 이름의 젊은 여인이 그 아이들을 얼마나 끔찍이 챙기며 살았을지, 그저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 든다.
그 확신이 들수록 마음이 묘해진다.
이튿날 아침이 되어 창밖을 보니 온 세상이 마치 밀가루를 펼쳐 놓은 듯 온통 하얗다.
새벽녘 눈이 내려 어여쁜 아침을 선사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다며 가까운 민속박물관으로 향했다.
관람을 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헤어지자며 목적지를 정한 것이다.
도로의 눈은 벌써 많이 녹아 있었고, 자동차와 사람의 발길이 덜 닿은 곳만이 하얀 설원처럼 남아 있었다.
주차를 하고 누구도 밟지 않은 눈을 밟아 보며 즐거운 비명도 질러 보고,
하얀 눈 위에 몸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사진도 찍어 보고,
옛 생활을 돌아보는 민속박물관 관람도 기분 좋게 마쳤다.
주름 가득한 여인의 얼굴에도 행복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휠체어에 앉아 아들들과 옛이야기를 쉬지 않고 이어 가신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언제까지나 마음속에 남아 있을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토끼가 살아 있을 것 같은 전설처럼 커다란 보름달이 떠올랐다.
하루는 그렇게, 말보다 깊은 마음을 남긴 채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