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대출했다.

나는 아직도 그 이자를 나로 갚는 중이다.

by 스윗
“병원에 가 봐. 너처럼 피곤해하던 애가 갑상선이었어.”
“살 더 빠졌네. 다이어트해?”
“요즘 계속 퀭해 보여.”

사람들의 말은 어느새 병원 검진 권유로 바뀌었다.


늦은 퇴근,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을 뒤로한 밤들이 쌓여갔다.

병원에 갈 시간은 없었다.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정상 수치가 2.5인데, 0에 가깝네요. 이 정도 될 때까지 뭐 하셨어요.”

의사의 말에 그제야 숫자가 보였다.

나는 그동안 다른 숫자만 보고 있었다.


대출 원금, 이자, 통장 잔고.


먹어도 배가 고팠고, 화장을 해도 얼굴은 퀭했다.

손끝은 떨렸고, 살은 점점 빠졌다.


그래도 난 멈추지 않았다.

이자가 줄어드는 걸 확인하면 안도했다.

나는 그것을 ‘성실함’이라고 믿었다.=


이자는 줄고 있었지만, 나는 병들어 가고 있었다.




새벽 세 시까지 무거운 눈으로 아르바이트를 해도

통장 속 숫자가 정리되는 걸 보면 행복해졌다.

하지만 병원에서 들은 숫자는 정반대였다.


자산은 올라가고 있었지만,

내 몸의 수치는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시적이었지만

온 세상이 어둠에 잠긴 것처럼

미세한 빛도 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공기를 느끼며 서있었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줄이고 있던 건 원금이 아니라,

내 몸의 잔고였다는 걸.


“적당히 살랬지.”

엄마의 혀 찬 소리가 가슴 밑바닥에 오래 남았다.


나는 흙수저를 벗어나기 위해 통행료를 내고 있다고 믿고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건 통행료가 아니라

건강과 시간을 담보로 한 대출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이자를 나로 갚는 중이다.




이전 08화결혼보다 먼저, 가난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