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그만 다녀.
멀쩡한 사람도 골병들겠어.
그러다 너 죽어"
엄마의 “힘내, 화이팅” 대신
처음으로 "멈춰"라는 말을 들었다.
울컥했다.
오랫동안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말투는 투박했지만
날 걱정하는 눈빛에 기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격 좋은 사람이야.
한번 만나 봐."
예전 직장 동료였다며 등 떠미는 친구 등쌀에 나간 자리는
집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계만 보던 전과 다르게 그냥 편했다.
복시는 더 심해졌고
눈 뒤 염증이 생겨 안구를 밀어냈다.
그레이브스병은
내 얼굴을 내 얼굴이 아니게 만들었고
거울을 보면
괴물이 있는 것 같아 외면했다.
내 대출이자는 무너진 내 얼굴이었다.
"좋아질 거야.
얼굴 다시 돌아올 거야."
떠날 줄 알았던 사람이
곁에서 내 손을 잡아주었다.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혼자 버티는 삶” 말고
“함께 이겨내는 삶”을 생각했다.
내 얼굴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나는 처음으로 계산을 멈췄다.
내가 결혼을 결심한 건
내 아이에게 잔인한 대출의 결과를 주지
않아도 되어서였다.
거울에 비치는 잔인한 내 얼굴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희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동생들도 그냥 결혼했고
애들도 지들이 알아서 하면 되니."
시어머니의 말은
순진하게 믿을 만큼 달콤했다.
"그래도 결혼인데
엄마가 금이라도 해줄까.
내가 속상해서."
딸을 생각한 엄마의 그 말은
어떤 예물보다 귀했다.
우린 둘이서 살기에 적당한 집을 골랐다.
그런데
조용히 준비하던 결혼식 일주일 전,
일이 터졌다.
결혼 준비는 우리 둘의 몫이었지만
결혼은 둘만의 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결혼할 거야, 말 거야.
먼 친척들 허탕 치면 큰 실례야.
빨리 결정해"
아빠의 체면 앞에 딸은 없었다.
"무슨 일이야.
밥은 먹었어? 어디 있는 거야?"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날 선 엄마가 겹쳐졌다.
오랜 시간 깊게 패인 상처에도
엄마를 놓지 못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바닥까지 떨어트린 건 날 선 엄마였고
숨을 쉴 수 있게 가는 줄을 준건 엄마뿐이었다.
난 나를 대출해 빚을 갚던 인생을 접고
내 무너진 얼굴까지 담보로 받아준 이 사람을 나는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