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칼바람이 몰아쳤다.
수전증에 걸린 노인처럼
부르르 떨던 나뭇잎에 이슬이 하나 맺혔다.
이슬에는 긴 밤을 견딘
나뭇잎의 고뇌와 아픔이 서려 있으니
무심코 떨어지는 물방울과 다르다.
허리가 구부러진 주름투성이의 노인
옛 친구의 묘지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깊게 팬 주름 길을 따라 흐르다
땅에 닿기도 전에 말라버린다.
긴 시간의 고뇌와 수고가 고스란히 맺혀있으니
철없는 아이의 눈물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은 가을날 나뭇가지와 이별하는
나뭇잎보다도 서럽다.
이른 아침, 창문을 열자,
나뭇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이 보였습니다.
간밤의 바람이 얼마나 거셌는지
이슬은 부르르 떨며
나뭇잎 끝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물방울 하나가
밤새 떨며 버텨온 나무의 긴 고백처럼 느껴져서,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이슬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잎사귀가 밤새 부딪히고,
온도가 엇갈리는 그 경계에서야 비로소 맺힙니다.
그러니 이슬은 어떤 의미에서 고통의 산물입니다.
아무 저항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과는 태생부터 다릅니다.
빗방울은 하늘에서 그냥 내려오지만,
이슬은 버티다 버티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에 맺힙니다.
예전 성묘를 하던 중 만난 한 노인이 떠올랐습니다.
허리는 세월의 무게에 깊이 굽어 있고,
얼굴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주름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가 흘리는 눈물은 젊은 사람의 눈물과 무게가 다릅니다.
오래 살았다는 것은 오래 잃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친구를 잃고, 형제를 잃고, 어쩌면 자식을 먼저 보내기도 하면서,
그 모든 상실을 가슴에 쌓아온 사람의 눈물입니다.
우리는 흔히 눈물의 양으로 슬픔을 잽니다.
엉엉 우는 사람이 더 슬픈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깊은 슬픔은 오히려 소리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슬픔을 다뤄온 사람은 울음을 크게 터뜨리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대신 그 눈물 한 방울에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다 담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가을날 나뭇잎이 가지를 놓는 것보다도 훨씬 서럽습니다.
이슬도 그렇습니다.
폭우는 요란하지만 금세 마릅니다.
이슬은 소리도 없이 맺히고,
햇살이 닿기 전 이른 아침에 잠깐 보이다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그 작은 존재 안에 밤 한 편이 통째로 담겨 있습니다.
이슬과 눈물, 그 안에 담긴 고뇌의 두께는
우리가 쉽게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