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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찌 할아버지

by 이진무


버찌 할아버지의 본명은 아무도 모른다.

사실 할아버지 자신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코가 잘 익은 버찌처럼 시뻘겋고 반질반질한 덕분에 동네 사람들은 그저 버찌 할아버지라 불렀다.

처음엔 장난삼아 붙은 별명이었겠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게 이름처럼 굳어져 버렸다.

버찌 할아버지는 고물상을 운영했다.

아니, 겉으로만 그럴싸한 고물상일 뿐 실상은 좀도둑질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물건을 주워 오는 게 자기 직업이라 굳게 믿었다.

주인이 있든 없든 그에게는 큰 상관이 없었다.

멀리 여행을 갔다는 소문이 돌면 그 집을 살짝 털었고,

새로 묘를 썼다는 이야기가 들리면 부장품을 슬쩍하기도 했다.

그는 이 외에도 훔치는 방법이라면 백 가지쯤은 더 알고 있을 것이다.

덕분에 그의 고물상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필요 없는 물건도, 주워 왔으면 팔아야 한다는 게 그의 철칙이었다.

그의 집 앞마당을 들여다보면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고장 난 텔레비전, 화면이 깨진 컴퓨터, 삐걱거리는 냉장고, 다리가 부러진 의자, 찌그러진 양동이…

이 모든 게 햇볕에 바래 고철 냄새를 풍기며 바람에 삐거덕거리고 있었다.

바람 소리마저 오래된 고물처럼 삐걱댔다.

하지만 버찌 할아버지의 욕심은 그 모든 고물을 쌓아놓고도 채워지지 않았다.

어제는 또 어디선가 죽은 이의 무덤에 값비싼 귀금속이 함께 묻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버찌할아버지 공동묘지.jpeg


그날 밤, 할아버지는 삽과 곡괭이를 들고 어둠 속으로 나섰다.

공동묘지에 들어서자 싸늘한 공기와 매캐한 냄새가 그를 맞았다.

매일 같이 드나드는 곳인데도 그날따라 가슴이 괜히 철렁거렸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묘지 사이를 터벅터벅 걷던 버찌 할아버지는 그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저런! 저게 무슨 일이지?’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별똥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별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하나의 별이 있었다.

마치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네듯, 길고 아름다운 꼬리를 반짝이며 뚝 떨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별은 버찌 할아버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고 있었다.

처음엔 차갑게만 보이던 그 빛이 점점 커지더니, 뜨거운 불덩이가 되어 할아버지 눈앞으로 다가왔다.

버찌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앗 뜨거워!”

뜨거운 열기는 그의 등허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휙’ 지나갔다.

그러고는 멀지 않은 곳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멋지게 착륙했다.

“끼이익… 쾅! 치이이익…”

버찌 할아버지는 벌떡 일어났다. 온몸의 피가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의 눈은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빛이 났다.

“아하! 저 빛은 분명 보통 물건이 아니야!”

할아버지의 오랜 지론은 ‘반짝이는 것은 언제나 가치가 있다!’였다.

정신이 번쩍 든 할아버지는 궁금증에 이끌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건 동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딱 봐도 이 세상 것이 아닌 괴상한 물건이었다.

바로 우주선이었다.

그것도 그의 고물상을 열 개쯤 이어 붙이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우주선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완전히 소리 하나 없이 공동묘지 한복판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우주선의 외관은 마치 거대한 은빛 물고기 같았다.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였고, 표면에는 미세한 선과 홈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어디가 문이고 어디가 창문인지도 알 수 없었다.

여기저기 희미하게 빛을 내는 작은 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 같았다.

우주선.jpeg


바람이 불자 우주선 표면이 아주 살짝 물결처럼 출렁이는 듯 보였지만,

그것이 착각인지 실제인지 버찌 할아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우주선이 몹시 이상하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냄새도 묘했다. 쇳내 같기도 하고, 오래된 전자제품 타는 냄새 같기도 했다.

용기를 내어 다가가자, 우주선의 한쪽 표면이 미끄러지듯 열리며 승강로 같은 것이 나타났다.

삐걱거릴 줄 알았는데, 조용했다. 그 정적이 더 오싹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버찌 할아버지는 잠시 숨을 멈췄다.

우주선의 내부는 그의 상상과 전혀 달랐다.

여기저기 금은보화가 널려 있길 기대했건만,

웬걸, 그 안은 깨끗하다 못해 기괴할 만큼 깔끔했다.

빛은 벽과 천장에서 스스로 뿜어져 나왔는데,

형광등 빛처럼 싸구려 티가 나지 않고 고요하고 신비로웠다.

매끈하고 은색과 청색이 뒤섞인 금속 벽은 손끝에 살짝 닿자 미지근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금속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의 피부 같았다.

바닥은 마치 유리 같아 반짝였지만 미끄럽지 않았고,

그 위로 어지럽게 얽힌 선들과 기호, 낯선 문자가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이 우주선이 스스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버찌 할아버지는 긴장 반, 호기심 반으로 안쪽으로 더 걸어 들어갔다.

천장은 아주 높았고, 그 위에서는 마치 별 무리 같은 점들이 반짝이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조명인지, 장식인지, 아니면 저 별들이 진짜 우주에서 보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컴퓨터가 우뚝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양새는 버찌 할아버지가 봐온 컴퓨터들과는 전혀 달랐다.

기계라기보다는 커다란 수정 덩어리 같기도 하고, 심장이 뛰는 생명체 같기도 했다.

금속덩어리, 우주선 내부.jpeg


그 앞의 탁자 위에는 배구공만 한 쇳덩어리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 쇳덩어리는 우주선의 빛을 받아 유난히 반짝였고,

버찌 할아버지 눈에는 그게 바로 ‘값어치 나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공간은 너무도 조용했다.

그의 발걸음 소리조차 벽에 스며드는 것 같았고,

어딘가 먼 곳에서는 마치 우주선이 낮게 숨을 쉬는 듯한 윙윙거림이 들리는 듯했다.

가만히 서 있자니, 우주선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를 지켜보는 눈이 어디선가 수없이 달린 것처럼…

하지만 버찌 할아버지는 그런 느낌쯤은 단숨에 떨쳐버렸다.

‘반짝이는 건 다 보물이다.’ 이 철학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눈은 번뜩이며 그 쇳덩어리를 들고선 재빨리 우주선을 빠져나왔다.

뒤도 안 돌아봤다.

돌아보면 무슨 수상한 것이 쫓아올 것 같았으니까…

버찌할아버지와 우주선.jpeg


그는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쇳덩어리를 마당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집에 와서 보니 그토록 빛나던 쇳덩어리는 시들한 깡통처럼 빛을 잃어버렸다.

그는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우주선에서는 그렇게 반짝였는데, 정작 주워 온 건 이 모양이라니…

“이걸 대체 뭐로 써먹어야 하나…”

버찌 할아버지는 턱을 긁적이며 쇳덩어리 앞에서 쭈그리고 앉았다.

바람이 또 삐걱 소리를 내며 마당을 스쳐 지나갔다.

마치 쇳덩어리도, 고물들도, 그를 비웃는 듯한 소리였다.

버찌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언가 좋은 꾀가 떠오른 듯 두 손을 딱 하고 마주쳤다.

“그래, 마침 밥그릇이 하나 필요했는데, 저걸 반으로 잘라 쓰면 딱 맞겠어.”

버찌 할아버지는 망설임도 없이 날이 번뜩이는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금속 덩어리를 내려치려는 순간, 팔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어디선가 아주 작고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제발… 너무 세게 치지 마세요.”

버찌할아버지와 인공지능.jpeg


그 순간 버찌 할아버지는 간담이 서늘해지며 숨을 꿀꺽 삼켰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의사 선생님이 늘 조심하라던 그 심장이었다.

소리는 마치 사방이 꽉 막힌 곳에서 웅웅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할아버지는 두리번거리며 소리가 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작업대 밑도 살피고, 늘 잠가두는 찬장 문도 벌컥 열어 봤다.

못과 나사를 담아둔 바구니까지 뒤져 봤지만, 아무것도,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고물상 문을 열고 거리까지 내다봤지만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에이, 내가 잘못 들었겠지. 헛소리였을 거야.”

할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도끼를 다시 들었다.

그는 힘차게 도끼를 내리쳤다.

그런데 도끼날에 닿자마자 금속 덩어리는 미끄러져 나가더니 저만치 데구루루 굴러갔다.

그때 또다시 들려온 작은 목소리.
“아야! 아프잖아요, 정말!”

버찌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 버렸다.

눈은 불거지고 입은 떡 벌어져 혀끝이 턱 밑까지 늘어진 채였다.

숨이 턱 막혀 가슴이 쿵쾅거렸다.

잠시 후 간신히 입을 뗀 할아버지는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어… 어디서 ‘아야’ 소리가 난 거지? 여긴 나 혼잔데… 쇳덩어리가 말한다고? 그럴 리가 있나. 이건 그냥 쇳덩어리인데…”

확인이라도 하듯 할아버지는 주먹으로 덩어리를 툭툭 두드렸다.

청아하고 맑은 금속음이 퍼졌다.
“봐라, 그냥 쇳덩어리잖아. 그럼… 그 안에 누가 숨어있기라도 한 건가?

그렇다면 이 할아버지를 잘못 봤군. 독 안에 든 쥐지, 내가 톡톡히 본때를 보여 주마!”

버찌 할아버지는 두 손으로 불쌍한 쇳덩어리를 집어 들고 벽에다 인정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쾅쾅!”

쇳덩어리를 내려칠 때마다 마당 가득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까치들이 깜짝 놀라 날아오르고, 고양이 한 마리는 담장 밑에 있다가 소스라치듯 도망쳤다.

잠시 후 숨을 헐떡이며 할아버지는 동작을 멈췄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혹시 또 그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크게 웃고는 코를 만지며 소리쳤다.

“그럼 그렇지! 내가 괜히 겁을 먹었어. 분명 ‘아야’ 소리는 착각이었어. 이제 다시 일이나 하자!”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간담이 서늘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용기를 내려고 할아버지는 낡은 라디오를 틀었다.

스피커에선 귀에 익은 유행가가 찌지직거리며 흘러나왔다.

할아버지는 심호흡하고 이번에는 도끼를 내려놓고 톱으로 금속 덩어리를 자르기로 했다.
“그래, 이번엔 차근차근 톱으로 잘라 보자.”

버찌할아버지와 톱.jpeg


그러나 톱질을 시작한 지 몇 번 되지도 않아, 그 귀에 익은 목소리가 깔깔 웃으며 튀어나왔다.

“그만 하세요! 너무 간지러워요!”

불쌍한 버찌 할아버지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손에 쥔 톱을 떨구고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입은 떡 벌어지고, 숨은 콱 막힌 듯 가슴이 쿵쾅거렸다.

금속 덩어리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할아버지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마룻바닥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제야 자신의 몰골을 보고는 기가 막혔다.

사람들이 거의 몰라볼 정도로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늘 버찌처럼 빨갛던 코마저 겁에 질린 나머지 파랗게 변해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고물상 문을 두드렸다.

버찌 할아버지는 일어설 힘도 없어 앉은 채로 겨우 말했다.

“들어오세요!”

문이 삐걱 열리더니 커다란 체구에 눈매가 사나운 노인이 불쑥 들어섰다.

바로 근처 연구실에 사는 제페토 박사였다.

그가 연구실에서 뭘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하루 종일 뚝딱, 쿵쾅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틈만 나면 고물상에 와서 쓸만한 물건이 있나 기웃거리곤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들어서자마자 이리저리 고물 더미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정리해 둔 고물들이 다시 엉망이 됐다.

버찌 할아버지는 화가 나서 없던 힘도 불끈 솟았다.

“이봐, 제페토 박사! 필요한 게 있으면 말을 해! 그렇게 다 뒤엎지 말라고!”

하지만 제페토 박사는 여전히 고물에 코를 박은 채 말했다.

“꼭 필요한 것을 정하고 오는 건 아냐. 이렇게 뒤지다 보면 필요한 게 나오는 거지.”

“그럼 남의 물건이 뒤죽박죽돼도 상관없단 말인가?”

“내가 언제 물건을 뒤죽박죽 했단 말인가? 자세히 보면 모든 건 원래 있던 대로 있는 거야.”

버찌 할아버지의 눈이 번쩍 빛났다.

“무슨 소리야! 냉장고 문짝은 활짝 열려 있고, TV는 거꾸로 뒤집혔고, 라디오는 폐지 더미 속에 처박혀 있잖아!”

제페토 박사는 팔짱을 끼고 점잖게 말했다.

“자넨 단순히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몹시 나쁜 습관이 있구먼. 다시 잘 봐. 모든 건 그 자리에 있는 거야.”

버찌 할아버지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제페토 박사는 늘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말로 얼버무리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할아버지의 머릿속에 번쩍 하고 기막힌 꾀가 떠올랐다.

‘그래, 저 귀찮은 금속 덩어리를 저 자에게 줘 버리자. 골치 아픈 걸 들고 가서 또 뭐라고 하는지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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