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

by 이진무

높은 산꼭대기에서 동그란 돌멩이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 내려왔습니다.

산비탈을 타고, 계곡을 지나, 시냇물에 씻기며 돌멩이는 초목이 우거진 들판까지 왔습니다.

오랜 여행 끝에 돌멩이는 유리구슬처럼 반들반들해졌고,

햇빛에 비추면 맑은 거울처럼 반짝이는 아주 예쁜 돌이 되었습니다.

들판에서 혼자 놀던 어느 날, 돌멩이는 신기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민수야, 이리 와!”

“영희야, 같이 놀자!”

개와 고양이에게도 이름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들판의 꽃과 나무에게도 장미, 민들레, 소나무, 느티나무 같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바람, 하늘, 구름, 별에게도 모두 이름이 있었습니다.


‘왜 나에게는 이름이 없을까?’

돌멩이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누구도 자신을 부르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더 이상 깔깔거리지 않았고,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 차서 점점 거무스름하게 변해갔습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나도 모두와같이 행복할 수 있을 텐데.’


돌멩이는 자신의 이름을 찾아 쉴 새 없이 굴러다녔습니다.

들판을 달리고 개울을 건넜습니다.

큰 바위에 부딪혀 파란 멍이 들기도 했지만, 멈추지 않고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어느 작은 농가에서 삼색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안녕, 혹시 너는 내 이름을 아니?”

고양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름은 네가 나에게 알려줘야 하는 거야.”


이름이 없는 돌멩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황급히 다른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는 허수아비가 바람에 펄럭이며 새를 쫓고 있었습니다.

“저기요, 혹시 제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허수아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저리 가!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안 보여?”


돌멩이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녔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시간이 흐르면서 돌멩이는 닳고 닳아 점점 작아졌습니다.

몸집만 작아진 게 아니었습니다. 마음도 함께 작아졌습니다.

‘나는 살아있는 게 아닌가 봐. 나는… 이미 죽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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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는 풀밭 사이에 파묻혀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습니다. 겨울 눈이 내리고 다시 봄이 왔습니다.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돌멩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조용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길을 가던 한 아이가 풀밭에서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달려왔습니다.

“어? 여기 예쁜 돌이 있네!”

아이는 돌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만지작거리며 말을 걸었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어? 외롭지 않았니? 이름이 뭐니?”


아이는 쉴 새 없이 물었지만, 이름이 없는 돌멩이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계속 재잘거렸습니다.

“이름이 없는 모양이구나. 그럼 내가 이름을 지어줄게.”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밝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단단하고 예쁜 돌이니까… 단단이라고 부를게. 단단아!”


그 순간이었습니다.

돌멩이는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멈춰 있던 마음이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내 이름은… 단단이구나!”


돌멩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저 높은 산꼭대기에서 왔어.

산비탈을 타고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다가 계곡에 빠졌고, 시냇물을 따라 여기까지 왔어.”

"와, 정말? 그럼, 고생이 엄청 많았겠네. 그래서 이렇게 멋진 단단이가 된 거구나!"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우리 아빠가 그러셨거든. 고생을 많이 하고 이겨내면 더 멋진 사람이 된다고. 단단아, 너는 정말 멋져!"

“고마워. 너도 정말 멋진 친구야.”

돌멩이의 눈에서 반짝반짝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흐르는 눈물이었습니다.


아이가 이름을 불러준 그 순간, 단단이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제 단단이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기억하고, 자신을 부르고,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단단아, 우리 집에 가자. 내 방 창가에 두면 아침마다 햇살에 반짝일 거야.”

아이가 단단이를 손에 꼭 쥐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단단이는 아이의 손 안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생각했습니다.

‘이름이란 참 신비로운 거구나. 누가 나를 불러줄 때, 나는 비로소 살아있는 존재가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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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단단이는 아이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단단아,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를 듣고, 매일 밤 “단단아, 잘 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단단이는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찾아 헤맸던 이름은 처음부터 누군가가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이름은 혼자 가질 수 없는 것,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만 생겨나는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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