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흘러가지 않는다

by 이진무


하얀 병실, 하얀 침대보.

그 위에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떨리는 두 손을 뒤로 숨기고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밥은 드셨어요? 어디 아픈 데는 없고요?”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창밖 먼 산을 바라보았다.

가슴속 무언가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울음을 삼키고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당신은 죽을 겁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웃었다.


창밖의 비는 멈출 줄을 모르고.

그녀 주위로 양귀비꽃이 지천으로 깔렸다.


무심한 잘못과 방황, 괴로움은

눈물에 다 씻겨갈 줄 알았다.


그러나 아픔은 흘러가지 않는다.

저수지로 흐르는 물처럼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갈 뿐.


그녀는 나를 사랑했을 것이다.

나는 모른 척했다.

때로는 모진 말을 던졌다.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평온했기에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픈 가슴을 움켜쥐고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아도

나는 끝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나의 차가운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운 말들이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파서

아픔의 저수지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웃기만 했다.


그녀는 마음이 넓은 천사이므로

다 괜찮은 줄 알았다.


아픔은 시간을 따라 강으로 바다로

쉽게 흘러가는 줄 알았다.




다정한 연인.jpg


저수지는 끊임없이 물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쉽게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닮았습니다.

우리는 상처받으면 그것을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둡니다.

말하지도 못하고 쉬이 흘려보내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착각합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도 한마디 사과를 하면 다 풀릴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지만 아닙니다.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밖으로 흘러 나갈 때까지 마음속 저수지에 갇혀 머뭅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오래 갇힌 감정도 썩습니다.

그렇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됩니다.


저수지는 차곡차곡 쌓인 기억의 그릇입니다.

아름다운 추억도, 아픈 상처도 모두 담습니다.

하지만 흘려보내지 못하면 그 맑았던 기억마저 탁해집니다.

저수지는 늪이 되고 우리 스스로를 옥죕니다.


이제 우리 주변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무심코 던진 차가운 말 한마디 때문에,

내가 외면했던 그 순간들 때문에

누군가의 마음속에 저수지를 만든 건 아닌지.

그 저수지가 지금 천천히 썩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늦기 전에 물어봐야 합니다.

“괜찮아요?”라고.


늦기 전에 말해야 합니다.

“미안해요”라고.

“사랑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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