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드림렌즈와 아트로핀
지난 수요일 아침, 여느 때처럼 아이의 드림렌즈를 빼주려다 멈칫했다. 눈곱이 유난히 많았고, 눈동자가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결막염인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급히 학교 알림장에 메모를 남기고, 곧장 안과로 향했다. 의사는 환절기에 많이 발생하는 알러지성 결막염이라며 기존에 쓰던 안약만 넣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안도했지만, 돌아보면 너무 쉽게 안심했다.
진료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기 싫다는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으로 갔다. 평소 같으면 집에서 쉬게 했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에세이 수업’을 빠질 수가 없었다. 2시간 동안 아이를 어린이 열람실에 두고 계단을 올랐다.
아이는 눈이 조금 따갑다고 했지만, 여전히 밝았다. 그 모습에 나도 안심했고, 다음 날 학교에도 보냈다.
그렇게 이틀이 흘렀다.
그리고 금요일 새벽 네 시. 고요한 새벽, 아이의 비명에 잠이 확 달아났다. 얼굴은 눈물로 번들거렸고, 눈은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급히 렌즈를 빼고 인공눈물을 넣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막염쯤이야 금세 낫는 줄 알았는데, 그 말이 무색할 만큼 고통스러워했다. 조금만 찾아봤다면, 그날 렌즈를 끼우지 않았을 것이다. 세제 하나를 살 때도 그렇게 꼼꼼히 검색하면서, 아이 일에는 왜 늘 한 발 늦을까.
새벽부터 안과 문이 열릴 때까지, 아이는 잠과 울음 사이를 오갔다. 눈이 따갑다고 울다 잠이 들고, 설게 잠이 들었다 퍼뜩 깨어 또 울기를 반복했다. 혹시 각막이 손상된 건 아닐까. 우리 부부는 불안 속에서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다행히 각막은 괜찮았다. 항생제가 들어간 안약으로 약을 바꾸고, 렌즈는 병원에서 전문 약품으로 다시 세척했다.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 혹시 내 부주의로 아이가 아픈 건 아닐까, 자꾸 되짚었다.
하루 더 학교를 빠지고 쉬기로 하고, 자지 않으려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재우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렸다. 아이는 저녁시간이 다 되도록 다섯 시간을 내리 잤고, 나도 옆에서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고열에 시달려 달뜬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무력감을 느끼고, 밤새 이어지는 가래 섞인 기침에 등을 두드려 줄 수밖에 없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제발 대신 제가 아프게 해 주세요.’ 그 말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
모든 병을 막론하고 아이의 크고 작은 통증은 늘 부모의 무력감을 데려온다.
초등학교 입학 직후, 시력검사 종이에 적힌 숫자는 ‘0.2’.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기에 예감은 했지만, 막상 그 숫자를 보고는 멍해졌다. 엄마 아빠도 초등 고학년쯤에야 안경을 썼는데, 겨우 여덟 살에 안경이라니. 충격과 미안함이 함께 밀려왔다. 혹시 티브이나 태블릿을 너무 보여준 건 아닐까, 자연에서 더 뛰어놀게 했어야 했는데 책 읽는 모습이 예뻐 가만히 뒀더니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처음엔 아이는 안경을 쓰게 된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가족들 중 자신만 안경을 쓰지 않으니 왜인지 모를 소외감이 들었나 보다.
“드디어 나도 엄마 아빠처럼 똑똑해 보여!” 설렘이 가득했던 아이의 그 표정은 채 두 달을 가지 못했다.
“엄마, 안경 쓴 내 얼굴 너무 못생겼어.”
줄넘기 학원에서도, 수영학원에서도 안경을 쓰니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듯했다. 친구들 중에 드림렌즈를 끼는 아이가 생각보다 많았다. 관건은 렌즈를 씻어서 관리하고, 매일 밤 끼워주는 일들이 결국 다 부모의 일인데, 감당할 수 있느냐였다. 드림렌즈를 끼면 근시 속도 저하에도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듣고, 결국 우리는 드림렌즈를 맞췄다.
요즘 부모들의 3대 통곡의 벽이 있다고 한다.
드림렌즈, 성장호르몬주사, 교정
그중에 하나를 가지게 된 거다. 렌즈값 백만 원, 3개월마다 넣는 안약값은 10만 원, 렌즈 보존제와 세척제도 3개월에 6만 원. 카드도 울고 마음도 울었다. 밤마다 렌즈를 끼우는 일은 여전히 전쟁이다. 하루 종일 학원과 숙제로 지친 아이가 겨우 책 한두 장 읽다 잠드는 시간,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기다린다. 아이가 잠들기 전, 조심스레 렌즈를 눈 위에 올려놓는데도, 이틀에 한 번꼴로 아이는 운다.
잠버릇이 고약한 아이는 자다가 무심결에 눈을 비비고, 그러다 새벽에 렌즈는 돌아가고 아이는 자지러질 듯 울고. 오전에 렌즈를 빼다가도 이미 흰자로 돌아간 렌즈를 찾지 못하고, 애먼 동공에만 뽁뽁이를 눌러대며 눈알이 빠질 듯이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보며 허둥대던 아침이 반복되었다.
아이는 렌즈를 처음 끼던 때보다 더 공포심을 느꼈고, 공포를 느낄수록 렌즈를 끼우고 빼는 건 더 힘들어졌다.
“엄마, 무서워, 아파.”
"렌즈 낀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뭐가 무서워."
매일 똑같은 말만 오고 갈 뿐이다.
게다가 3개월마다 안과에 방문해서 시력검사를 하니, 드림렌즈 착용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아이의 근시 진행 속도가 또래보다 워낙 빨라서, 늦추려면 아트로핀 점안액을 함께 써야 한단다. 하지만 그 약은 동공을 확장시킨다는 부작용이 있었다. 하굣길, 아이는 늘 인상을 찌푸린 채 두리번거렸다. 밝은 표정으로 엄마를 부르며 달려오는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내 아이는 눈부심에 고개를 숙이며 나를 찾았다. 선생님께 “너 불만 있냐?”는 말을 듣고, 친구들에게도 “너 지금 속상해?”라는 질문을 자주 받곤 했다. 눈부심 때문에 찡그린 얼굴이, 사람들 눈에는 짜증으로 보였던 거다. 그렇게 아홉 살 아이의 콧잔등에는 주름이 생겼다.
세상을 더 잘 보여주고 싶어 넣은 약인데, 그 약 때문에 아이는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눈이 좋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이 덕분에 새삼 깨닫는다. 기술이 이렇게 발전했는데, 초원의 독소리까지 볼 수 있다는 몽골인처럼은 아니더라도 평범한 시력으로 돌아가게 해 주는 약 하나는 왜 안 나올까.
아이도 부모도 우리 모두 조금씩 지쳐간다.
아이는 말한다.
“그래도 안경은 싫어.”
나는 말없이 아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비루한 유전자만 전해준 것 같아서, 그게 참 미안해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만큼 보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 그 곁에서 조금 더 도움이 되는 부모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