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예회 줄넘기 사건
우리 집 아이는 장난꾸러기다. 친구들을 웃게 만드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단다. 학교에서도 개그맨 포지션을 맡고, 일부러 어리숙한 표정을 지어 아이들을 웃긴다.
그런데 요즘은 유독 한 여자 친구에게 마음이 쏠려 있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걸 계기로 급속도로 친해졌고, 얼마 남지 않은 학급 학예회에서 둘이 팀을 이루어 줄넘기를 하기로 했다.
“엄마, 나 이제 걔랑 진짜 친해졌어.”
그 말에 나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단짝친구가 따로 없고 두루두루 지내던 딸이 내심 걱정이었는데, 매일 안정적으로 어울리는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 친구는 인기가 많다.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 몰려들고, 점심시간에도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줄을 선단다. 공부도, 운동도, 영어도 잘하고, 심지어 예쁘기까지 하니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종종 그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타이밍을 재는 듯했다.
한 달쯤 전, 아이가 툭 내뱉었다.
“걔는 내가 먼저 말 걸지 않으면 절대 나한테 먼저 말 안 걸어. 그래서 하루는 한 번도 말을 안 걸어봤는데, 진짜 종일 나한테 인사도 안 하더라.”
그 말을 듣는데, 내 억장이 무너졌다. 이게 뭐라고, 그런데 왜 이렇게 아팠을까. 아이는 담담했는데, 나는 그 담담함이 더 아팠다.
여자아이들의 관계는 참 묘하다.
단둘이 있을 땐 그렇게 웃고 장난치던 사이가, 여럿이 모이는 순간 어딘가 불편해진다. 그 안엔 미묘한 거리감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그 선을 밟는 순간, 관계의 공기가 달라진다. 나도 그걸 안다. 나도 그 시절, 그 선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었으니까.
아이는 지금 딱 그 지점에 서 있는 것 같다.
그 친구에게는 유치원 시절부터 붙어다니던 단짝친구가 있는데, 그 둘 사이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을 애써 감추는 모습이 보였다. 끼어들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끼고 싶어 하는 그 간절한 마음. 그게 참 안타까웠다.
오늘은 온종일 혼자 놀았단다. 가져간 책을 두 권이나 다 읽었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앉아서 책을 읽었다나. 책을 읽는 건 물론 좋지.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슬펐다.
책 속으로 도망친 아이의 마음을 나는 안다. 혼자라는 사실을 덜 느끼려고, 활자를 붙잡는 그 마음을.
그런데 갑자기 그 친구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버렸다.
줄넘기 학예회를 같이 하기로 했는데, 마음이 변했다며 선생님께 먼저 말을 했단다. 아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친구가 무책임하다고 생각했고, 아이에게 사과를 하든 양해를 구하든 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오버인가 싶다가도, 아니었다.
이건 단순히 아이들 일로 넘길 수 없는, ‘예의의 문제’였다. 그래서 결국 터져버렸다.
“걔 웃긴다! 그건 잘못된 거야. 마음이 변할 수는 있지만, 약속은 지켜야 해. 이미 조도 짜졌고, 부모님들한테 학예회 순서도 공지로 내려왔는데, 이제 와서 마음이 변했다고 지키지 않겠다면, 너한테 사과라도 해야지.”
그런데 아이는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엄마가 내 친구 나쁘게 말하니까 기분 나빠.”
그 말이 내 심장을 콕 찔렀다.
나는 너 위한다고 그런 말을 한 건데.
아, 벌써 친구가 부모보다 더 중요한 시절이 왔구나. 머리로는 알았는데, 가슴은 준비가 안 돼 있었다.
그래서 애써 목소리를 낮췄다.
“엄마가 네 친구를 나쁘게 말하려는 게 아니라, 네가 상처받았을까 봐 그랬어. 근데 네가 괜찮다면, 엄마도 괜찮아질게. 아직 학예회까지 2주는 남았으니까, 다른 걸 준비해 보자.”
그날 밤, 유리멘털 우리 부부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생각할수록 내가 걔한테 너무 서운한 거 있지. 혼자서 얼마나 잘하나 볼까보다, 정말”
그 말을 아이가 들었고, 방에서 나와 다시 말했다.
“걔 잘하면 좋지. 엄마! 내 친구니까 응원 좀 해주라. 나쁜 말 하지 마. 내가 친구들이랑 잘 못 지냈으면 좋겠어?”
아오, 진짜. 저 쥐 콩알만 한 게,
아이는 가끔 나보다 어른스러울 때가 있어서 꼭 내가 미성숙한 감정을 드러낼 때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나는 아직 용서가 안 됐는데, 정작 아이는 벌써 괜찮아져 있었다.
아이의 ‘괜찮아’는 어쩌면 체념이고, 혹은 단단함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오래 생각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란, 언제나 대칭적이지 않다는 걸.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만큼, 그 사람도 나를 똑같이 좋아해 줄 거란 보장은 없다는 걸.
어쩌면 사랑도, 우정도 본래 일방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가 같은 질량과 밀도로 사랑할 수는 없는 거니까.
아이도 지금, 그걸 알아가는 중일 것이다.
나는 문득, 중학교 반 소풍 때, 커다란 관광버스에서 혼자 앉아 가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같이 타자던 친구가 다른 아이와 앉겠다고 가버리고, 혼자 남은 나는 어쩔 줄 몰라 버스 커튼 뒤에 숨어 조금 울었다. 그때의 나는 버림받았다는 생각과 외로움 속에서 그렇게 울 수밖에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 내 콩알만 한 딸은 오히려 괜찮다고, 그 친구를 응원했다. 씁쓸하면서도 기특했다.
사람 사이에는 늘 ‘마음의 속도 차이’가 있다. 누군가는 이미 다른 길을 걷고, 누군가는 아직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든다. 그건 잘못이 아니라, 그냥 각자의 리듬이다. 그걸 알아차리기까지, 우리는 상처를 통해 배운다.
아이도 지금 그 리듬을 배우는 중일 것이다.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 외로워서 읽은 책, 아무렇지 않은 척한 말투. 그 모든 게 자라는 과정의 문장이다.
나는 아직도 그 친구가 미운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세상에는 사과보다 성장으로 갚는 일들이 있다는 걸.
아이가 그런 사람으로 자라주길 바란다.
누구보다 따뜻하게 상처받고, 그 상처로 다른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