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됐다고.
오픈빨이었을까, 생각보다 한가했다. 오전에 요구르트 아주머니께 건네받은 요거트를 들고 2층으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앉아 한술 떠먹었다. 맛이야 뭐 아는 맛이고, 그저 멍 때리기 좋은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눈앞에 보이는 침대를 향해 가까워지고 싶지만 한 번 잠들면 쭉 잘 것만 같으니 참아야지.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곧장 1층으로 내려갔다. 엄마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엄마들의 목소리가 커지니, 스피커 속 팝송은 기세에 눌렸다. 커피와 음료를 제조하고 건넸다. 잠시 정적. 엄마들은 신나서 수다 떨기 바쁜데, 나는 할 일이 없었다. 커피 한 잔 내려서 잠시 쉬려는 찰나였다. 엄마들의 이야기에 시선이 꽂히고, 귀가 쫑긋 열렸다. 아이들 학원 이야기는 진부하고, 남 걱정하는 이야기는 세상 재밌었다. 나도 모르게 끄덕이고, 나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리고, 나도 모르게 윗입술을 당겨 올렸다. 그새, 누가 온 줄도 모르고 방심했다.
와우, 문이 열리자마자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존재감이 확실했다. 파란 눈은 뭘까, 잘 못 본 걸까? 렌즈를 낀 것 같은데 평범하지 않았다.
“아니, 커피는 마시지도 않는데 왜 불러~! 저 밑에 포차에서 한잔하자니까~!” 그녀의 말에 엄마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얌전한 강아지들처럼 순해졌다.
‘존재감 보소.’
한 달, 두 달. 오전엔 정민시 그녀의 방문이 조용한 듯 분위기가 있고, 오후엔 엄마들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시트콤을 보는 것 같았다. 엄마들의 푼수 같은 모습에 피식, 눈을 맞추며 함께 웃으니 금세 친해졌다. 그러나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마음은 방심한 듯 편하지 않았다.
어느 날, 다들 내 눈치를 힐끗 보는 게 느껴졌다. 문득, 촉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눈웃음과는 대비되는 속마음이 영 반갑지 않았던 어느 엄마가 조심히 물어왔다.
“사장님~~! 요즘 장사 어떠세요~~?” 그녀의 눈웃음은 분명 의도가 있어 보였다.
“왜요~? 더 팔아주시게요~?” 눈을 피하지 않고 되받아치니 어쩔 줄 몰라했다.
“아니~ 오후에 보면 항상 저희만 있는 것 같아서요~~” 그 앞에 있던 엄마가 말했다. 웃으면서 하는 말에 뼈가 있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의도가 뭘까?
“오후엔 한가하긴 해요~”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이며 차분하게 말했다.
“오후엔 술 팔 생각 없어요~ 사장님~?” 눈웃음치던 그녀가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모두가 눈이 반짝거렸다. 아무리, 시간에 머물고 사람이 머물고 마음이 머물기를 바랐어도,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난데없이 술을 팔 생각이 없는지 묻는다는 건, 내가 그만큼 편해졌을까? 들고 있던 티스푼이 차가운 칼날처럼 위험하게 감지됐다.
선을 넘은 거라 느껴졌다. 표정 관리를 할 줄 몰랐다.
“아직 오픈한 지 얼마 안 됐는데요~~? 말씀은 감사한데, 고민해 볼게요~~!” 적당히 차분하게, 그러나 과하지 않게. 옅은 미소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요새 프랜차이즈도 아니고~~ 개인 카페는 많이들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눈치 없이 옆에 있던 엄마가 말을 더했다.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커피 머신의 스팀 버튼을 눌러 치익, 소리와 함께 스팀 완드와 노즈를 닦아냈다.
카운터에 얹어둔 작은 거울만 봐도 엄마들의 표정이 보였다. 엄마들 앞에서 괜히 친근한 척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우리 카페가, 이 공간이, 자신들의 집 거실쯤으로 아는 걸까? 편하게 이용했으면 하는 마음이 금세 내쫓고 싶어졌다. 물론, 개인 카페가 오후에 술을 파는 곳은 꽤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때였다.
“아우~ 이 답답이들아~!” 파란 렌즈 그녀가 문을 확 젖히며 열고 들어왔다. 어찌나 문을 세게 젖혔는지 퍽, 소리에 뺨이라도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니~ 사장님 반응이 미지근하네~” 눈웃음치던 그녀가 나를 향해 들으라는 듯 말을 이었다.
파란 렌즈 그녀가 카운터로 몸을 틀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상체를 불쑥 들이밀며 말을 걸어왔다. 그때, 나는 왜 순간적으로 화가 올라왔을까, 아무래도 이 사람이 만만치 않을 거란 느낌이 맞았다. 겉으로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그러나 말투는 억누르듯 대답했다.
“네~ 아까 손님이 말씀하신 부분 고민은 해보겠지만 너무 갑작스럽네요.”
“아이~ 우리는 저 밑에까지 가야 하니까~~! 여기서 술 마시면 우리는 가깝고 좋지요~ 사장님은 매출 올리고요~! 사장님도 같이 마시면 더 좋고요! 친목 도모죠~ 이참에 여기 엄마들 다 제대로 소개할게요~” 영업이 어울리는 듯 그녀는 내게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죄송한데, 전 술 안 마셔요. 그 말씀은 더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층은 제 주거 공간이고요. 저희는 밤 열 시면 마감이에요. 휴게음식점이고요.” 어색한 입가 경련으로 표정 관리를 더욱 실패했다.
파란 렌즈 그녀는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뚫어지게 쏘아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고는 알겠다며 죄송하다고, 짧은 대답만 하고는 몸을 틀었다. 그녀는 엄마들 자리로 다가가 소파에 털썩, 괜스레 고개를 들고 좌우로 천장을 훑었다. 엄마들의 눈빛은 모두가 바통 터치라도 하듯 서로를 향해 주거니 받거니, 파란 렌즈 그녀는 못마땅하다는 듯 입술을 끌어올렸다. 짧은 정적은 나만 불편했을까, 괜히 어쭙잖게 웃으며 친해졌다가 선을 그어야 하는 일이 낯설고 또 낯설었다. 아니, 불쾌했다. 이것도 텃세였을까? 허, 내 손에 들린 게 티스푼이 아닌 밥주걱이었으면 진작에 뺨따귀를 날렸을지도 모른다. 매너는 어디에 흘리고 왔을까, 무슨 예의일까. 나는 찝찝한 마음에 등을 돌려 마감하듯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꿎은 제빙기 안 얼음을 뒤적이며 입에 하나 넣었다. 와그작와그작, 씹어대는 소리와 냉기로 목구멍을 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