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환풍구 위에 서는 일은 금기를 밟는 것과 비슷하다. 위험하지만 짜릿하다.
보도블록의 견고한 질서 사이로 갑자기 나타난 철제 격자무늬.
그 아래는 끝을 알 수 없는 수직의 낭떠러지다.
사람들은 보통 그곳을 피해 걷지만 때로는 떠밀리듯 그 철망 위를 지나야 할 때가 있다.
발밑에서 훅 하고 끼쳐오는 바람은 불쾌하다.
그것은 결코 자연의 산물이 아니다.
거대한 기계가 쉼 없이 돌아가며 뱉어내는 열기, 수만 명의 인파가 뿜어낸 이산화탄소, 그리고 지하의 눅눅한 습기가 뒤섞인 '도시의 폐'가 토해내는 호흡이다.
미지근하고 들척지근한 바람이 종아리를 타고 올라올 때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짐승의 뱃속에 들어와 있다는 기분이 든다.
영화 속 마릴린 먼로는 환풍구 위에서 펄럭이는 스커트 자락을 누르며 천진하게 웃었지만 현실의 나는 결코 그럴 수 없다. 나에게 그 바람은 낭만적인 연출이 아니라 도시가 삼켰다가 미처 소화시키지 못한 찌꺼기들의 분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먼로의 스커트를 들어 올렸던 바람이 빛나는 조명 아래의 환희였다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바람은 지하 삼 층의 고단함이 묻어있는 비릿한 숨결 같았다.
나는 황급히 걸었다.
도시의 공기는 비정상적으로 습해 찰나의 정적만으로도 옷깃 틈새마다 점성이 달라붙는다.
삼키기엔 버겁고 무시하기엔 생경한 바람.
우리가 안락함을 위해 지하로 유배 보냈던 것들이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는, 일종의 소리 없는 아우성 같기도 했다.
전광판의 화려함과 빌딩의 매끄러운 표면 뒤로 이런 축축한 생리(生理)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보도블록 위를 걷는 내 신발 바닥에는 방금 스쳐 온 지하의 미지근한 고독이 한 뼘 정도의 흔적을 남긴 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