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하는 날

by 고양이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두세 시간 동안 의자에 고정된 채 거울 속 나와 마주 앉아 있어야 한다.

자유를 잃은 포즈, 목은 점점 조각상처럼 굳어간다.


그래서 잠시 머리를 길러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어깨를 스치는 머리카락을 상상하자마자(으웩!), 상상은 바로 폐기되었다.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


이 질문은 언제나 인생의 갈림길처럼 들린다.


“파마해 주세요.”

“가르마는 어떻게요?”


여기서 틀리면 몇 달을 고개 숙이고 살아야 한다.

이건 거의 운명 선택 버튼이다.


“가운데로요.”


말을 뱉는 순간, 고비는 넘겼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림.


약 냄새가 내 주위를 장악하고 머리 위에는 작은 롤들이 군락을 이룬다.

나는 눈을 감는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수백 번쯤 주문처럼 되뇌다 보면 시간은 젤리처럼 천천히 늘어났다 줄어든다.

어느 순간 샴푸대의 물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린다.

긴 손톱이 자꾸만 귓바퀴를 찔러 목을 움츠렸다.

그리고 드라이어의 바람이 마지막 장면처럼 불었다.


거울 속 사람은 두 시간 전의 나와 조금 다른 실루엣이다.


“괜찮으세요?”

“네”


사실 안경을 벗으면 거울로 보이는 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은지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버텼다는 건 확실하니까.




작가의 이전글23. 화이트비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