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말일까지

아무리 채워도 비워지는 사람들의 자리

by 구시안

지루함을 견디려고 일하는 사람이 있듯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떠나는 사람이 있다.


5월의 푸르른 날에

내가 속한 요식업의 세계에는

이별이 키워드가 된다.


1년을 한 사람

3개월을 버틴사람

며칠 못하고 사라진 사람들까지

계속 이별을 전한다.


감정들이

받아들이는 것이

서로가 다른 사람들이기에

선택과 결단을 사람들과

여전히 구멍 난 양동이에 물을 붓고 있는

사람들로 나뉘어

감정이 고무줄처럼 늘어나

그 속의 느슨한 가짜 지속성을 깨닫고

얼굴에서 드러난 결단을 확인한다.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반투명한 진열장 같지만

서로의 머뭇거리는 사이에서 오고 가는

찌릿한 무언가가 전해져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이제는 그런 현상이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들이 보낸

이별의 메세지에는

모두가 "말일까지"라는

결단이 물들어 있다.


수많은 인간 군상이

똑같은 고통을 겪어왔다.

참고 버티거나

포기하고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

스쳐간다.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

휴머니티도 진정한 고통도 없다.

그들은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이해하게 되는 현상이

반복될 뿐이다.


사람들이 영위하는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볼수록 동물의 삶과 뭐가 다른지 잘 모를 때가 있다. 세상에 무심코 던져진 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 다른가.


이따금 만족스러운 순간들을 누리지만 똑같은 생리현상을 해결하며 살아가야 하고, 자신의 생각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고 실제 삶 이상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무엇이 다른가.


사람이 삶 안에서 자신의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뒹굴다가 잠드는 것처럼, 인간도 짐승도 정해진 법칙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말일까지.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던 거 같다.

일을 하며 모두가 마무리라는 이름으로 새긴 주홍글씨처럼.


마침내 파티가 끝나거나

자신의 역할이 끝났음을 알리는 가장 간단한 메시지.


저 아래 정원 뒤쪽에 있다고 전해 들은,

커다란 텐트 안에 차려놓은 만찬을 맛보러

갈 수 있을 때까지.


마지막을 예고한다.


어제 본 얼굴일지라도

오늘 보는 얼굴은 같지 않을 때가 있는 것처럼.

동일화는

동일하게 느껴지는 것일 뿐.

진정한 동일화는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의 결단은

늘 비슷하고 단순하게 보일 뿐이다.


매일 보는 얼굴들.

일상.

하루하루를 그만 보고 싶은 날도 있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 내 고질적인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테니.


도망칠 수 없고,

반항할 수 없고,

따를 수밖에 없는

삶의 유일한 법칙을

지키며 자리하는 사람들도 있기에.


낯설어 거부할 게 틀림없는

노예근성이 얼마나 떨쳐버리기

어려운 것인지 보여주는

지난 일기장들을 뒤적거려 보는 밤.


이 모든 것에 대한 지루함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어딜 가도

항상

나와 함ㄲ 있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는 나는

과연 그들처럼

새로운 곳으로 떠날 용기를 낼 수 있을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나 자신에게 숨 막혀하는

나는 어디서 마음껏

숨 쉴 수 있을까를.


바람이 지나간 후의 침묵과

새로운 사람들이 채워질 곳을 알기에

나이를 떠나 버린

재잘거리는 소녀들과 소년들이

자리하게 될 것을 알기에

이런 5월의 잦은 이별이 주는

그리고 또 이별을 예고하는

사람들의 행렬에

깨진 상형문자 같은 별들이 의미 없이

보이지 않는 하늘 어딘가 뜨는 밤.


이 순환의 모든 것이

참 신비롭다는 생각으로 물든다.


동반자 아닌 동반자.

친구 아닌 친구.

가족 아닌 식구.

그들이 들어왔다가

그들이 떠나간다.


멈춤들.

구두점.

말한 다음의 텅 빔.

모두.

뒤를 말없이 걷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발설되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기억하기로 한다.

이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작가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저작물을 공유, 게재 시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brunch membership
구시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자각(自覺). 나의 비릿한 언어가 향기로워질 때까지 낮과 밤을 천천히 걷기로 하다. 브런치 +184

1,01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3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68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4화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