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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아서 마침내 자유로운

완벽을 내려놓는 순간, 삶은 현재가 된다

by 구시안


우리는 오랫동안 완벽을 배웠다.

흠 없는 답안지, 흔들림 없는 태도, 단정한 삶의 궤적. 완벽은 언제나 미덕의 얼굴을 하고 우리 앞에 서 있었다. 그것은 성공의 다른 이름이었고, 존중받기 위한 조건이었으며, 사랑받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다듬고 또 다듬으며, 마치 하나의 작품이 되기라도 하듯 결점을 지워나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완벽에 가까워질수록 삶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숨이 가빠졌고, 마음은 점점 조여 왔다.



완벽함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끝내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이었고, 도달했다고 느끼는 순간조차 더 높은 기준으로 밀려나는 신기루였다. 완벽을 향해 걷는 길에서 우리는 자주 멈춰 서서 자신을 의심했다. 아직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직 모자라다는 핑계로, 삶을 유예했다. “좀 더 나아지면”, “조금만 더 준비되면”이라는 말은 언제나 현재를 밀어내는 가장 정중한 변명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깨닫는다. 완벽은 삶을 완성시키는 조건이 아니라, 삶을 미루는 장치였다는 사실을.



완벽하려는 욕망은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현재로부터 분리시킨다. 지금의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전제가 깔린 채로, 삶은 늘 미래형으로만 존재한다. 그렇게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속에서만 자신을 허락한다. 그곳엔 현재를 묻고 있는 이는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는 그 반대편에 있다.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순간, 삶은 비로소 현재형이 된다. 부족함을 끌어안는 일은 체념이 아니라 결단이다. 나는 이 모습 그대로 살아도 된다고, 흔들리면서도 걸어가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이다. 그 허락이 내려지는 순간, 삶을 옥죄던 기준은 힘을 잃고, 우리는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불완전함은 실패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의 가능성이고, 움직임의 여백이다. 완벽한 것은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 더 나아질 여지도, 다른 길로 갈 여지도 없다. 반면 미완의 존재는 언제나 열려 있다. 실수할 수 있고, 돌아설 수 있으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불완전한 존재만이 성장한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배우고,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 다가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그렇다.

완벽한 사람은 멀리서 바라볼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곁에 머무르기는 어렵다. 반대로 결점이 있는 사람은 손을 내밀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상처와 흔들림은 연약함의 증거이지만, 동시에 연결의 통로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의 불완전함 속에서 안도하고, 그 안도 속에서 신뢰를 배운다.



어쩌면 자유란 아무 제약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애쓰되, 지금의 나를 부정하지 않는 태도. 이상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현재를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균형. 그 균형 위에서 삶은 더 이상 시험장이 아니라, 경험의 장이 된다.



완벽하지 않아서 우리는 흔들린다.

하지만 그 흔들림 덕분에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서 우리는 넘어지지만, 그 자리에서 새로운 시야를 얻는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우리가 찾던 자유는 완벽의 꼭대기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그것은 오히려 내려놓는 자리, 스스로를 허용하는 자리, 미완의 자신과 화해하는 자리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채로 살아간다.

그러나 그 미완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끝나지 않았기에, 아직 열려 있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을 새로 쓸 수 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삶은 더 이상 증명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살아내면 되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마침내 자유롭다. 완벽을 내려놓는 순간, 삶은 현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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