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웃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웃고 싶지 않아 졌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건, 웃음이 자연스러운 반사 작용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을 즈음부터였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웃음이 나보다 먼저 튀어나왔다. 상황을 해석하기도 전에 얼굴이 반응했고, 그 반응을 나 자신도 따라가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웃음은 생각을 통과해야만 가능한 일이 되었다. 지금 웃어도 괜찮을까, 이 웃음은 오해를 낳지 않을까, 나는 정말 웃고 있는 걸까. 질문이 많아질수록 웃음은 점점 늦어졌고, 결국 자주 생략되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배달된 책들을 정리하고 앉아 숨을 고르며 잠시 멍을 때렸다.
책을 늦게 읽는 편은 아니지만, 문 앞에 놓인 책들을 보니 저것들도 일상 속의 부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좋아하던 철학과 심리책은 이제 책장에서 사라졌다. 그 남은 공간들을 누군가가 쓴 감성의 물결로 채우고 싶었다.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열어보고 읽어보며 고르는 책을 좋아하지만, 요즘 나에게는 연말을 맞아 시간이 없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니 거짓말처럼 하루도 안 돼서 도착해 있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일상 속에서의 읽기란 점점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문득, 머릿속은 웃는 일에 대한 사소한 생각이 커져가고 있었다. 웃는다는 것.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던가. 그 믿을 수 없는 것은 이미 경험을 통해 배웠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긍정의 메시지들은 이제 신물이 난다. 읽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다.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웃고 있는 건지, 웃다 만 건지, 어색한 웃음을 띠고 있는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살아가다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을 보면 그때의 추억으로 돌아가게 된다. 예전 애인이 찍어주었던 사진이었다. 웃는다는 것. 그것은 빛바래져 가는 사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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