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설득하는 언어에 대하여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의 속마음은 단정하지 않다.
그것은 늘 흔들리는 문장으로 존재한다. 괜찮다는 말은 사실 상태의 보고가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안전한 선택이며,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미 마음은 한 차례 접히고 난 뒤다.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그것을 말로 옮길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에 가깝다.
그는 먼저 상처받고, 먼저 이해하고, 먼저 납득한다.
그래서 말이 필요 없는 지점까지 혼자 도달해버린다. 그 결과 남는 것은 설명되지 않은 감정과, 설명할 기회를 스스로에게서 빼앗아온 침묵이다. 괜찮다는 말은 상대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는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반복해서 주입하는 암시가 된다. 그렇게 하루가 쌓이고, 관계가 이어지고, 사람은 조금씩 자기 마음과 거리를 둔 채 살아가는 법에 익숙해진다.
심리적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은 늘 자기 감정을 사후적으로 처리한다.
그 순간에는 괜찮다고 말하고,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왜 마음이 무거웠는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미 말해버린 ‘괜찮다’는 문장이 모든 해석의 가능성을 닫아버렸기에, 그 감정은 어디에도 제출되지 못한 채 남는다.
그래서 그는 자주 자신을 의심한다.
이 정도로 힘들다고 느끼는 내가 과한 건 아닐까, 모두가 이렇게 사는 건 아닐까, 굳이 문제 삼을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의 속마음에는 늘 자기 검열의 목소리가 함께 산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는 자기 경험에 대한 승인 권한을 타인에게 넘긴 상태와도 같다. 타인이 괜찮아 보인다고 판단하면 괜찮아야 하고, 타인이 문제없다고 여기는 순간 자신의 불편함은 사소한 것으로 축소된다. 그렇게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은 점점 자기 삶의 해설자가 아니라 관객이 된다. 무대 위에서는 성실히 역할을 수행하지만, 정작 그 장면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는다.
문학적으로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은 늘 문장의 끝을 삼킨다.
“괜찮아” 뒤에 붙어야 할 수많은 접속사와 부사가 생략된 채, 문장은 거기서 멈춘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고, 사실은 기대했고, 사실은 상처받았다는 말들은 문장이 되지 못한 채 마음속에서만 반복 재생된다. 그러나 그 반복은 해소가 아니라 마모에 가깝다. 말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성질을 바꾼다.
그것은 체념이 되거나, 무력감이 되거나,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터져 나오는 눈물이 된다.
그럼에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시 괜찮다고 말한다. 그 말이 유일하게 자신을 지켜온 언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묻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면서, 그는 오늘도 스스로를 설득한다. 지금은 아직 괜찮다고 말해야 할 시간이라고.
그러나 그 속마음은 안다.
괜찮다고 말해온 시간만큼, 언젠가는 괜찮지 않다고 말할 언어가 필요해질 것임을. 그리고 그때 비로소, 그가 삼켜온 모든 문장들이 하나의 긴 이야기로 이어질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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