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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식은 소리를 대신 말해 본다면

끝나지 않았지만 멀어진 관계에 대하여

by 구시안

사랑이 식는 소리는 대개 아주 작다.
유리가 깨질 때처럼 요란하지도 않고, 문이 닫힐 때처럼 분명하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사랑이 식었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아차린다. 소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듣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사랑은 사라지기보다 온도를 잃는다.

그리고 온도가 내려가는 과정에는 언제나 미세한 변화들이 먼저 있다. 사랑이 식기 시작하는 순간은 대개 어떤 사건이 아니라 태도의 변화로 온다. 더 이상 묻지 않게 되는 것, 설명을 줄이게 되는 것,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하고 넘어가는 순간들.



심리적으로 보면 사랑은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주의력의 문제에 가깝다.

상대에게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는가, 얼마나 자주 마음을 할당하는가. 사랑이 식는다는 것은 감정이 사라진다기보다, 그 주의력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일이다. 같은 열차를 탔지만, 서로 다른 창가에 앉아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피곤함처럼 느껴진다.

관계가 아니라 삶이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지금은 여유가 없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 설득은 대부분 성실하다. 우리는 관계를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이 식는 소리는 늘 합리적인 말들로 덮인다. “요즘 너무 바빠서 그래.” “원래 연애가 다 이런 거 아니야?” “안 싸우는 게 어디야.” 이 문장들은 사랑의 종말을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의 온도를 조금 더 낮춘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사랑은 언제나 관계의 윤리를 포함한다.

상대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어떤 노력을 유지할 것인가,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 사랑이 식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감정보다 이 윤리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의 마음을 추측으로 처리하는 순간, 우리는 관계의 윤리에서 한 발 물러난다. 사랑이 식는 소리는 바로 그 발걸음에서 난다. 아주 작지만, 되돌아오기엔 충분히 먼 소리.



문학 속에서 사랑이 식는 장면은 종종 침묵으로 묘사된다.

말이 줄어들고, 질문이 사라지고, 함께 있어도 각자의 생각이 따로 흐른다. 그러나 그 침묵은 평화롭지 않다. 그것은 말하지 않기로 합의된 침묵이 아니라, 말해도 닿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에서 비롯된 침묵이다. 심리적으로 이 단계에 들어서면 사람은 기대를 줄인다. 기대를 줄이는 것은 상처를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식는 소리는 그 기대가 내려앉는 소리이기도 하다.

오늘은 말하지 말자, 이번엔 그냥 넘기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렇게 하나씩 내려놓은 기대들은 어느 순간 관계를 가볍게 만들지만, 동시에 공허하게 만든다. 가벼워진 관계는 편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붙잡을 긴장이 남아 있지 않다. 사랑은 긴장 속에서 유지되는 감정이다. 사라지는 것은 갈등이 아니라 긴장이다.



사랑이 식은 사람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예전만큼 설레지는 않아.” 그러나 설렘은 사랑의 본질이 아니다. 설렘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 있어야 할 것은 태도다. 여전히 듣고자 하는 마음, 여전히 이해하려는 노력, 여전히 미루지 않는 대화. 사랑이 식는다는 것은 설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태도들을 유지할 이유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되는 상태에 가깝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랑이 식을 때 사람은 두 가지 선택 앞에 선다.

다시 감정을 회복하려 애쓰거나, 감정을 정리하기 시작하거나.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이의 어정쩡한 지점에 오래 머문다. 완전히 떠나지도, 완전히 돌아오지도 못한 채. 이 상태에서 사랑은 소음처럼 남는다. 분명 존재하지만, 더 이상 의미 있는 신호로 읽히지 않는 소리.



그래서 사랑이 식은 소리는 대신 말해줘야 한다.

관계 안에서 누구도 먼저 말하지 않으려는 그 문장들을, 누군가는 꺼내야 한다. “나는 예전보다 덜 묻고 있다.” “너의 하루가 예전만큼 궁금하지 않다.” “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 말들은 잔인해서가 아니라 정직해서 어렵다. 그러나 이 말들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침묵이 아니라 오해다.



사랑이 식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는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데우거나, 식은 것을 인정하거나. 둘 다 에너지가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그 소리를 외면한 채 관계를 유지한다. 유지된 관계는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더 이상 살아 있는 감정은 아니다. 그것은 기억으로 유지되는 관계다.



사랑이 식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대하는 가장 성숙한 태도일 수 있다. 사랑은 영원해야만 가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어떤 사랑은 식으면서 역할을 다한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무시하지 않는 일이다. 식는 소리를 들었다면, 그 소리를 존중해야 한다. 그 소리는 관계가 끝났다는 신호가 아니라, 관계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식은 소리를 대신 말해본다면, 그것은 이 문장에 가깝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있지만, 같은 온도는 아니다.” 이 문장을 말할 수 있을 때, 사랑은 비로소 감정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 선택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모른 척하지 않아도 된다.



사랑이 식는 소리는 작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고 말로 옮기는 순간, 관계는 적어도 거짓말 위에 서 있지는 않게 된다. 사랑이 끝나지 않더라도, 그 정직함만은 끝내 남는다. 그것이 어쩌면 사랑이 남기고 가는 마지막 윤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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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한 감정과 쉽게 합의된 문장들 사이를 기록합니다. 빠른 공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쓰고자 합니다. 내면을 중요시 여기며 글을 씁니다. 브런치 56일째 거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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