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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지 않는 허공에 서서

균형을 잃은 채 오늘을 통과하는 몸의 기록

by 구시안


나와는 아주 다른 단어가 가득한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어 내려가는 밤.

그는 유명한 시인이 아니라. 유용한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갖고 싶은 마음이 나태주 시인에게는 가득한 것이었다. 풍요로운 시선과 맑고, 밝은 마음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시인. 진정한 평화로움을 이야기하는 진정한 어른처럼 느껴지는 '나태주' 시인을 기억하기로 했다.



시인들은 너무 자기 이야기만 한다는 사실은 맞았다.

자기 상처, 자기 불행, 자기만의 밤. 세계는 늘 배경이고, 타인은 소품이다. 고통은 사유되지 않고 소비되며, 슬픔은 질문이 아니라 장식이 된다. 나는 아팠다, 그래서 썼다, 그래서 특별하다는 식의 고백은 너무 쉽다. 시가 자기연민의 안전지대가 되는 순간, 언어는 현실을 건너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태주 시인의 단어들을 통해 배운다. 시는 더 넓은 침묵을 건드려야 한다. 개인을 넘어 타인의 숨, 구조의 균열, 말해지지 않는 다수의 무게를 끌어와야 한다. 자기 이야기만 하는 시는 솔직할 수는 있어도, 강하지는 않다. 인간은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가기에 타인의 삶 따위엔 관심이 없다. 아주 자극적인 사건이 아닌 이상은 말이다.



밤은 입 안에 들어찬 철의 맛. 숨은 막히고 생각은 피처럼 벽을 타고 흐른다.

별은 없다. 있다면 다 거짓말이다. 하늘은 검은 배 속처럼 부풀어 나를 삼키려 한다. 책을 덮고 걷는 깊은 밤. 도망치듯, 토해내듯 거리의 불빛은 신경질적으로 깜빡이고, 내 눈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신은 여전히 나의 질문 따위에 침묵하고, 도덕은 눅눅하게 썩어 나는 젊은 분노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이를 간다.



나의 언어는 어둡다.

머리속에는 온통 이런 단어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것이 나인걸 어쩌겠는가. 그저 있는 그대로, 가진 것 그대로 '나'로 사는 것도 나쁜 짓은 아니다.



이 밤은 나를 키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부서지지 않은 채 더 날카롭게 만든다.



허공은 늘 그 자리였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닿는 순간 모든 것이 흔들리는 곳. 나는 그 안에 서 있었다. 발끝이 공중에 닿지 않은 채, 몸은 미세하게 기울어졌고, 마음은 늘 허공의 균열을 더듬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아니 바람조차 없는 공간에서 공기마저 나를 비껴가는 듯한 느낌 속에서, 나는 균형을 찾는다. 그러나 균형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전에 나를 떠난 단어였다.



밤은 내 몸을 찌르는 감각으로 다가왔다.

하늘은 발밑에 놓였고, 땅은 머리 위로 뒤집혔다. 빛과 그림자가 뒤엉킨 틈새에서 나는 방향을 잃었다. 고개를 들어도 별은 바닥 쪽으로 쏟아지고, 손끝에 닿아야 할 어둠이 어깨 위로 얹혔다. 나는 그 위태로운 자세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숨을 고른다.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허공은 나를 받쳐주는가, 아니면 끌어내리는가. 그 미묘한 힘의 차이를 느끼며, 나는 겨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담배 연기는 허공 속을 떠돈다.

위로 오르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공기 속에 풀어진다. 연기 속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무력감이 묻어 있다. 붙잡지 못한 체념,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슬픔, 오래전부터 익숙해진 공허. 그것들은 허공에 부딪혀 반짝이다가, 금세 흩어지고 사라진다. 나도 연기처럼 그렇게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순간들을 수없이 겪었다. 철봉에 매달려도 균형을 잃던 몸, 늘 한쪽으로 기울어진 감각으로 살아온 삶. 무너지지 않는 허공 속에서 나는 오늘도 겨우 버티며 숨을 쉰다.



허공은 내게 가르쳐 준다.

붙잡지 않아도, 쥐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소유하지 못한 것들을 놓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스쳐 간 순간, 스친 사람, 스친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살아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무너지지 않는 허공은, 그저 내게 남은 잔열과 미세한 온기만으로도 견딜 수 있다고 속삭인다.



밤은 여전히 말이 없다.

대답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허공의 무게를 느끼고, 몸 안쪽에 남은 미약한 온기와 생각의 잔열, 가라앉는 기분의 무게를 더듬는다. 그것들은 나를 떠나지 않고, 지금 내가 여기 서 있다는 증거처럼 남는다.



나는 여전히 기울어진 채로 균형을 연습한다.

넘어지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덜 아픈 쪽을 고르는 방식으로 하루를 건넌다. 그것이 비겁함인지 생존인지 구분할 수 없다.



허공 속 연기는 여전히 길게 늘어진다.

잠시 머뭇거리고, 조용히 흔들리며, 사라지듯 퍼져간다. 연기와 내 마음은 닮았다. 부유했다가 사라지고, 떠돌다가 흡수되고, 존재했다가 흔적만 남긴다. 연기가 하늘을 찾지 않는 것처럼, 나는 이제 하늘을 찾지 않는다. 발밑에 놓인 하늘도, 뒤집힌 풍경도, 허공 속에서 버티는 내 몸도, 더 이상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나는, 무너지지 않는 허공 속에 서 있을 뿐이다.



밤은 조금 더 깊어진다.

깊어질수록 생각은 아래로 가라앉고, 몸은 허공에 기대어 더욱 미세하게 흔들린다. 아무 답도, 아무 위로도 없지만,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사실이 남는다. 허공 속에서, 뒤집힌 밤 속에서, 나는 오늘을 통과한다. 무너지지 않고, 흔들리며, 끝없이 버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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