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숨, 부서지지 않는 밤
돌바닥은 밤의 등뼈였다.
차갑게 굳은 시간들이 사각형의 침묵으로 포개져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위에 하얀 꽃 하나가 마치 모든 언어를 다 써버린 뒤 마지막으로 남겨진 단어처럼 누워 있었다.
피지 않은 게 아니라 이미 다 말해버린 것처럼.
줄기는 꺾였고 잎은 이유를 잃은 채 흩어졌는데 그 흩어짐조차 우연이라기엔 너무 정직했다.
이건 애도의 제스처가 아니라 항복도 아니고 기념도 아니다. 그저 살아 있던 것이 세상과의 계약을 조용히 해지한 자리였다.
꽃은 여전히 꽃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더 이상 향기를 약속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이란 이렇게 쉽게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었나. 돌바닥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왜 여기에 왔는지, 왜 혼자인지, 왜 아직 하얀지, 그 무심함 속에서 꽃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부서진 순결처럼,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진실처럼.
누군가의 손에서 떨어졌을까, 아니면 의미를 견디다 지쳐 스스로 몸을 놓았을까.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장면을 시로 만든다. 말없이 놓인 것들만이 끝내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법이니까. 밤은 계속 바닥을 밟고 지나가고 사람들은 꽃을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 한 송이는 이미 충분히 본 적 있는 모든 슬픔을 대신 말하고 있었다.
숨이 나를 배신한다.
들숨은 몸속에서 불타는 쇳조각처럼 울리고, 날숨은 허공에 부서져 산산이 흩어진다. 나는 그 파편 위에 서서 호흡한다. 공기는 내 폐를 채우지만, 결코 나를 채워주지 않는다. 살아있다는 사실은 잔혹하게 선명하고, 동시에 무력하다. 호흡이 이어지는 한,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무엇이 바뀌겠는가.
밤은 몸을 찌른다.
어둠은 무겁게 가슴을 누르고, 빛은 발끝에서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하늘은 머리 위가 아니라 발밑에 놓여 있고, 나는 뒤집힌 세계에서 중심을 더듬는다. 내 눈앞의 별은 떨어지는 돌처럼, 내 심장의 잔열 위로 부서진다. 나는 발끝 하나 붙잡지 못한 채, 균형을 찾으려 허공을 움켜쥔다. 그러나 허공은 잡히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 그 감각, 바로 그것이 살아있음의 기록이다.
연기는 내 안에서 흘러나와 허공 속에서 껍질처럼 부풀었다가 터진다.
설명되지 않은 후회, 이름 붙이지 못한 슬픔, 오래된 체념. 연기는 그것들을 품었다가 태연히 사라진다. 나는 그 연기와 닮았다. 부유했다가, 흩어졌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진다. 살아있지만, 사라지는 존재. 호흡 하나하나가 나를 증명하지만, 동시에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다.
숨은 언제부터 내 것이 아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들숨과 날숨은 구분할 수 없는 회로처럼 내 안을 돌고, 끝없이 반복된다. 공기가 폐를 채우고, 다시 흘러나가는 그 순간마다 나는 내 몸이 살아있음을 확인하지만, 동시에 그 존재의 무력함도 마주한다. 호흡이 이어지는 한, 나는 아직 여기 있다. 그러나 호흡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할까.
밤은 그 기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창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과 어둠 사이에서, 몸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 심장은 조용히 뛰고, 숨은 규칙 없이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연기는 담배 끝에서 흘러나와 허공 속으로 흩어진다. 내 마음의 무게, 이름 붙이지 못한 슬픔, 오래도록 쌓여온 체념이 그 연기와 섞인다. 연기는 호흡처럼 사라지고, 나는 다시 들이마신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붙잡지 못한 시간과 놓친 사람들, 사라진 말과 쓰지 못한 글이 겹겹이 쌓인다. 날숨마다 잊혀질 것 같은 감정들이 흩어지고, 그 흔적은 공기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인다. 나는 그 반짝임을 더듬으며, 살아있다는 사실을 기록한다. 흔적 없는 호흡이지만, 그 안에는 나만의 역사가 있다.
호흡은 단순한 생리적 행위가 아니다.
끝나지 않는 호흡은 내 삶의 장면을 쓰는 펜이고, 미세한 떨림 하나하나가 문장이다. 울지 못한 날의 무력감, 너무 사소해서 잊힌 슬픔, 견딜 수 없어 내려놓은 감정의 조각들. 그것들은 숨과 함께 내 안을 떠돌다가, 허공에 남아 빛을 잃는다. 그러나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 호흡은 끝나지 않기에, 기록도 끝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묻는 그림자.
이 호흡이 언제 끝날지, 혹은 끝나지 않을 기록 속에서 나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지. 하지만 질문은 공허하다. 답은 호흡과 함께 흘러가고, 나는 오직 다음 숨을 들이마시는 일만 할 뿐이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삶을 읽는다. 삶이란 결국 호흡이라는 단순하지만 무거운 행위의 연속임을, 그리고 그 호흡 속에 기록되지 않은 순간은 없음을.
호흡은 동시에 자유롭고 잔인하다.
숨을 참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잃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은 호흡을 강제로 요구한다. 들숨과 날숨은 독립적이지만, 그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타협하며 살아간다. 허공 속에서 흔들리는 몸처럼, 호흡도 나를 흔든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내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남는다.
끝나지 않은 호흡은 결국 나의 기록이다.
흩어지는 연기, 내려앉는 어둠, 뒤집힌 밤과 흔들리는 몸까지, 모든 순간이 호흡과 함께 기록된다. 흔적 없는 듯 보여도, 그 흔적 속에는 내가 살아온 모든 날들이 쌓여 있다. 무너지지 않은 허공 속에서, 나는 계속 호흡하며 기록한다. 내 호흡은 끝나지 않았고, 그 기록 또한 끝나지 않았다.
밤이 지나도, 내 호흡은 멈추지 않는다.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숨을 쉬는 그 순간마다, 나는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살아있음을 기록한다. 끝나지 않은 호흡 속에서, 나는 오늘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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