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인간은 왜 글을 쓰는가.
아마도 말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술이 식고 담배가 타들어가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 몸 안에 쌓여 있다가 어느 날 이유 없이 꿈틀거리는 생각들, 말로 꺼내는 순간 너무 정직해져서 스스로를 다치게 할 것 같은 진실들 때문에 인간은 종이를 찾는다. 글은 고백이지만 심문은 아니고, 외침이지만 소음은 아니며, 살아 있다는 흔적이면서도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는 발버둥에 가깝다.
인간은 대체로 자신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아가고, 글을 쓰는 순간에만 잠깐 그 윤곽을 만진다.
그때 손에 묻는 건 의미가 아니라 체온이다. 문장은 논리보다 먼저 신경을 건드리고, 단어는 개념이 되기 전에 냄새와 촉감을 가진다. 그래서 어떤 글은 잘 썼다고 느끼기보다 아팠다고 기억된다. 문장을 약물처럼 찢어 놓았던 이유도, 시대의 작가들이 술기운에 인간의 추한 얼굴을 그대로 종이에 눌러 붙였던 이유도 결국은 같다.
세상이 너무 매끈하게 굴러갈 때, 글은 일부러 긁힌다.
인간은 질서보다 균열에서 자신을 더 잘 발견하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건 멋진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 이전의 찌꺼기를 긁어모으는 행위다. 분노의 잔여물, 사랑이 실패하고 남은 금속성의 허무, 의미를 찾다 실패한 후에 생기는 묘한 해방감 같은 것들.
인간은 그것들을 혼자 감당할 능력이 없어서 문장으로 나눈다.
그래서 글에는 늘 과잉이 있다. 너무 많이 말하거나, 너무 솔직하거나, 너무 쓸데없어 보이는 문장들. 하지만 그 쓸데없음이야말로 인간적이다. 효율적인 문장은 기계가 쓰지만, 살아 있는 문장은 늘 조금 낭비된다. 책을 남긴다는 건 더 이상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형태로 그 낭비를 세상에 던지는 일이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나를, 미래의 누군가가 우연히 이해해주길 바라는 무책임하면서도 절실한 기대. 인간은 죽음을 알기 때문에 기록하고,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에 남긴다.
책은 불멸을 믿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불멸을 믿지 않기 때문에 쓰인다.
언젠가 이 몸은 사라지겠지만, 이 문장은 누군가의 밤에 잠깐 머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도 실패해도 괜찮다는 체념 섞인 희망. 글은 세상을 바꾸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적어도 쓰는 사람을 잠시 버티게 한다.
오늘을 넘기게 하고, 내일을 마주할 핑계를 준다.
인간은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며 살아가고, 그 설득의 기록이 곧 문학이다.
그러니 인간의 글이란 결국 위대한 사상도, 정교한 구조도 아닌, 오늘을 살아냈다는 흔적이다. 숨이 막혔고, 혼란스러웠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는 보고서. 읽히든 말든, 이해되든 오해되든, 인간은 쓴다. 쓰지 않으면 너무 인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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