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이 아니라 위험으로서의 잠재력
그것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부터 만들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아직 아무도 그것을 부르지 않았고, 아무도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이미 세계와 충돌할 준비만은 끝내고 있던 어떤 밀도였다. 폭탄이라는 말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파괴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형을 바꾸기 위해 준비된 내부의 압력. 나는 그것을 잠재력이라고 부른다.
잠재력이라는 말은 늘 늦게 도착한다.
그것은 언제나 일이 벌어진 뒤에야 붙는다. 터지기 전에는 성격이라 불리고, 기질이라 불리고, 때로는 결핍이나 과잉으로 오해된다. 사람은 그것을 품은 채 살아가지만, 정확히 무엇을 품고 있는지는 모른다.
잠재력은 드러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은 증명되는 순간부터 이미 소모되기 시작한다. 너무 이르게 이해되면, 너무 빠르게 칭찬받으면,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을 확장할 공간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잠재력은 종종 실패의 형태로 자신을 보호한다. 일부러 늦어지고, 일부러 어긋나며, 일부러 길을 잃는다. 그 시간 동안 잠재력은 자신에게 맞는 세계를 고른다. 어떤 벽이 견딜 수 있는지, 어떤 균열이 아직 열려 있는지를 조용히 시험한다.
잠재력을 가진 사람은 늘 현재에 완전히 안착하지 못한다.
충분히 잘 살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임시 거처에 머무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안정 속에서도 불안을 품고, 성취 속에서도 설명되지 않는 결핍을 느낀다.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는 감각. 아직 호출되지 않았다는 감각. 사람들은 그것을 미성숙이라 부르지만, 어쩌면 세계가 아직 그를 부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삶의 핵심은 늘 말해지지 않은 부분에 남는다.
잠재력도 그렇다. 그것은 완성된 문장보다 미완의 문장에 더 오래 머문다. 선택된 길보다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들 속에서 더 크게 숨 쉰다. 잠재력을 가진 사람은 결정을 내린 뒤에도 그 결정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의식한다. 이미 택한 삶 옆에 남아 있는 다른 삶들의 그림자를 끝내 지우지 못한다.
잠재력은 축복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에 가깝다. 한 인간을 평생 불편하게 만드는 내부 장치다. 쉽게 만족하지 못하게 하고,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며, 반복되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게 만든다. 왜 그래야 하는지, 왜 지금 이 방식이어야 하는지를 끝까지 묻게 한다. 그래서 잠재력은 사람을 고립시키기도 하고 침묵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침묵 속에서 세계를 다시 배열할 힘이 축적된다.
모든 잠재력이 폭발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끝내 터지지 않은 채 사람의 태도와 시선을 바꾼다. 터지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는 아니다. 터졌다고 해서 완성도 아니다. 잠재력은 결과가 아니라 상태다. 한 인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함부로 소진하지 않았는지를 증명하는 내부의 압력이다. 그래서 나는 잠재력을 가능성이라 부르기보다 위험이라고 부르고 싶다. 세계를 그대로 두지 못하는 위험. 자신을 지금의 형태로 고정시키지 못하는 위험. 그러나 바로 그 위험 덕분에 삶은 아직 닫히지 않는다. 문장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아직 완전히 규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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