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의 기적

고요를 선택한 사람이 다시 언어에 붙잡히기까지

by 구시안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거절했다. 뻔한 것이 싫어서. 그 뻔한 것이 주는 충격을 피하고 싶어서. 더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에 온갖 에너지를 쏟아붓고 싶지 않아서. 경력에. 네트워킹에. 앞날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뭔지도 모르고 달려들어 물고 싶어 하는 굶주려 있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양보했다. 우울하지도 전혀 감정적이지도 않았다. 고통스럽거나 걱정되지도 않았다. 거절은 때론 기가 막힌 기적을 부리니까.


온갖 욕을 쓰기 시작한 나의 눈은 100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정확히 회사 대표를 향해 응시하고 있었다. 누구도 함부로 보지 않는 그의 두 눈을 계속 응시했다. 내 눈에서 발사되는 모든 이야기를 이해라도 한 것인지. 회사 대표는 나를 오래 붙잡지 않았다. 마치 나의 눈에서 출력되는 모든 언어를 이해라도 하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3초의 응시를 끝내고 대표를 바라보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기뻤던 것은 거절의 기적이었다.


고요한 마음으로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하루가 저물어 가며 일상은 끝나갔다. 창백한 유리창 밖은 여전히 시끄러울 테지.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이 그리 시끄럽지는 않기만을 바랐다.


귀에서는 동일한 멜로디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집에 도착하면 빨래를 하고, 요리도 할 수 있다. 중심을 가로질러 계단을 오르면서 상승했다가 하강하는 심장을 느끼고 있었다. 극적이지도 않은 하루였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 보니, 충격이라는 것은 통제가 되는 것이었다. 마치 예언자처럼 되어 버린 '촉'이라는 것은 미래를 예측해 내기 시작했을까.


무모한 일을 거절하는 것. 어쩌면 피하는 것이 정확한 답일 테지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새해에 그것이 현실이라고, 상황이 그렇다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척하는 사람들과 담배를 피우며 함께 웃어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내 눈에는 결과가 기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과 섞여 누군가의 기적을 잠시 응원하며, 잿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웠을 뿐이다. 곧 밤이 오기 때문에.




공허한 휘파람을 불었다.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에서 불고 싶었지만, 미친놈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휘파람을 불다가 언어가 추하고 악취가 날 거 같아 가사는 붙이지 않았다. 글과 언어를 혐오하던 때가 있었다. 염증을 느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까. 아무 의미 없는 글자 나열들에서 해방되어 3년간 글을 읽지도 쓰지도 않았다. 사실이어도 마치 거짓 같아서. 이런 걸 읽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싶어서. 감정을 일으키는 사랑하는 시인들의 책도 놓아버리고 그렇게 살았다. 책에 대한 애도의 본질을 쉽게 찾을 수가 없을 만큼의 시간이 흘러가 버리도록. 일상 속에 일과 집을 오가며 가끔 어디론가 사라지듯 떠나는 여행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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