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상징이기를 거부한 날
“나는 인간을 지킨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설명되는 방식을 지켜왔다.”
이렇게 말한다면 너무 거창할까요.
르네가 떠난 뒤에도 세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이 저를 가장 오래 붙잡았습니다. 인간 하나가 이야기에서 이탈했을 뿐인데, 세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켜 온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설명되는 방식이었다는 사실을요.
계약은 자동으로 갱신되지 않았습니다. 이전까지는 인간이 결정을 내리는 순간마다 저는 언제나 호출되었습니다.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되돌릴 수 없을수록 저는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아무도 저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투명했고, 여전히 파리를 걸을 수 있었지만, 더 이상 목적은 없었습니다. 목적 없는 존재는 관찰자가 아니라 잔여물이 됩니다.
저는 기록소로 향했습니다. 전쟁 이후 가장 바쁜 장소였으니까요. 이름들이 정리되고, 사건들이 분류되고, 살아남은 자들이 각자의 위치에 배치되고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기적입니다.”
“이쪽은 회복 단계로 분류하시죠.”
“침묵은 아직 증언의 한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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