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의 무대

투명인간의 결심

by 구시안

전쟁이 끝난 뒤의 파리는 피를 씻어낸 도시처럼 지나치게 밝았습니다. 총알이 스쳐 간 벽 위에는 회색 석고가 새 살처럼 덧발라져 있었고, 광장은 다시 웃는 얼굴들을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센 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녹슨 하늘을 비추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물 위에는 이름 붙여지지 않은 기억들이 기름막처럼 조용히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카페의 유리잔은 지나치게 투명했고, 그 투명함 속에는 말해지지 않은 죽음들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빵을 씹었고, 신문은 승리를 접어 팔았으며, 폐허는 너무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습니다. 밤이 오면 가로등은 전쟁 이전보다 더 정확한 빛으로 거리의 상처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걷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었고, 죽은 사람들은 도시의 균형을 위해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파리는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 계속됨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르네와 저의 관계는 점점 아슬아슬한 서커스를 하고 있는 곡예사들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르네가 삶을 포기하기로 선택한 것은 선언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정은 소리 없이, 너무 조용히 도착했습니다. 마치 오래된 건물의 내부에서 이미 무너진 기둥이 겉으로는 아무 변화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날 아침, 파리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쟁은 끝났고, 폐허는 정리되고 있었으며, 도시는 복구라는 이름의 화장을 막 끝낸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도시는 기억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인간은 그 회복 속도에 가장 먼저 배제된다는 사실을요.


르네는 센 강 쪽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목발은 더 이상 짚지 않고 있었습니다. 전쟁에 잃은 것은 다리 한 쪽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습니다. 다시 살아야 할 이유 쪽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갈 수는 없었습니다. 삶을 포기하기로 한 인간은 그 결정만으로도 이미 다른 밀도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 밀도는 저 같은 존재를 밀어냅니다. 보호도, 계약도, 동행도 허락하지 않는 밀도였습니다.


르네가 멈춰 선 곳은 폭격으로 반쯤 무너진 극장이었습니다. 지붕은 없었고, 객석은 폐허가 되었지만 무대만은 이상할 정도로 온전했습니다. 전쟁은 언제나 관객을 죽이고 무대만 남겨 두는 법이니까요.


그녀는 그 위에 섰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포즈도 취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르네는 죽음을 연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을 끝내 설명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상태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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