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부레·보케의 하루
오늘의 무대 배경은 푸른 달빛처럼 청아하다.
그러나 아침 아홉 시 반부터 마주하는 모든 것에는 열렬한 현실감이 덧입혀진다.
유난히 거세게 쏟아지는 것은 없지만,
머릿속에서는 푸른 달빛 아래 펼쳐진 거대한 가장무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미각은 입맛을 다시고,
후각은 도시의 썩은 냄새를 들이마신다.
청각은 사람과 도시의 소음 속에서
금방이라도 폭풍이 몰아칠 듯 흔들린다.
거리의 소음은 각자의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들고,
나는 새하얀 빛 속에서 움츠러든다.
추위에 몸을 웅크리지만
마음은 요란한 전율을 내기 시작한다.
오늘의 대기는
미지근했다가 차가웠고,
뜨거웠다가 다시 뒤섞인다.
뒤죽박죽 엉켜 검은 폭우의 구름을 만들며
점점 더 흉측해진다.
휴식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오늘은 모두가 혼자이고 싶은 눈치다.
사무실은 두터운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다.
밥을 먹을까.
아니다. 현장을 가보자.
문득 현장 소장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오늘도 머리를 싸맨 채, 불콰한 얼굴로
지난밤의 흔적을 품고 있을까.
질질 끌리듯 이어지던 속삭임이 끝나갈 즈음,
점점 강해지던 빛을 지나
빛없는 골목으로 접어드니
폭풍의 진동이 멀어지며 잦아든다.
제우스의 허약한 번개는
아직 나를 칠 생각은 없는 듯하다.
상가 공사 현장에 들어서자
예상했던 얼굴로 웃는 소장이 다가온다.
이 친근함은 무엇일까.
어쩌면 나는
누군가를 걱정하고 있었던 걸까.
딴생각을 할 법도 한데
나 역시 웃으며 그의 손을 잡는다.
누군가의 땀은 역시나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완성되어 가는 새로운 매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상상의 에피소드.
차가운 잿빛 하늘에서 영혼을 아프게 만드는
색깔의 비라도 내린다면,
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른 대기와
딱 맞아떨어질 거 같았다.
방심한 상태로 걸어가다가 다른 길로 들어 서 버렸다.
하얀 통유리창 안에 아트북이 수놓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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