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자기만족 28화

자정을 가리키는 아침

낮에도 꺼지지 않는 내부의 종소리

by 구시안

지붕 위를 두드리던 마지막 빗방울 소리도 멎고, 새롭게 포장한 도로 위로 하늘빛이 천천히 퍼지며 활기찬 자동차 소음이 일어나면,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듯 햇빛을 받으려고 창문을 열어 젖히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내가 소리 내리 내어 낮게 중얼거린 단어들은 고요한 수도원 같은 고립의 공간 속에서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 몽상에 빠져 방안이 큰길이라도 되는 양, 단호한 걸음을 이리저리 옮겼다. 창문을 열자 처마에 고인 빗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왔다. 아직도 비가 그친 후의 축축하고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이런 소소한 풍경에 행복을 느낄 때쯤 뭔가 알 수 없는 불안이 정체를 알기 힘들지만 고상한 욕망이 나를 압도했다.


아침인데도 머릿속의 괘종시계는

자정을 가르치고 울리는 종소리 열두 번에 잠을 깬다.


앞당겨 일어나는 사건처럼 겨울의 어둠은 빨리 내려앉기에 마치 하루일과가 더 늦게 끝나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어둠은 밤이고 밤은 곧 휴식이며 자유이고 귀가이다. 어둑해진 사무실을 뒤로하고 쏟아지는 사람들의 틈에 섞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사람들의 체온덕에 따뜻하다.


밤의 커피는 각성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진 습관이다.

잠과는 거리가 멀고, 카페인이 수면을 방해한다는 말도 내 경험과는 다소 다르다.

커피를 마시고도 깊이 잠들었던 날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거리를 걸으며 휴대용 타자기와 다른 없는 휴대폰 메모장에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 둔다. 잊어버릴까 봐. 나이가 드니, 데이터에는 저장이 많아졌는데 그것을 불러내는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말하고 글 쓰고 대답하고 대화하는 모든 행동 뒤에서 여전히 꿈을 꾸는 밤을 보내고 있다. 라디오가 켜져 있거나, 바보상자가 말을 하고 있거나, 어차피 두 눈은 하얀 화면을 향해 있다. 나의 꿈을 방해하는 어떤 기억 옆에 앉아 있더라도 놀라지 않는다. 이미 감정이 섞여 복잡하고 괴로울 때면, 그런 것은 상관 없지니까.


오늘도 장부에 기록하듯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

이것은 쾌락도 아니고 혼자 즐기는 권력도 아니고

혼자만이 즐기는 자유일 뿐이다.


누추한 일상 속에서 자주 느끼는 역겨움의 원인은 바로 사람들이었다.

접촉과 대화를 통해 나는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의 데이터에 접근하게 된다.

삶과 나란히 있는 그들의 삶의 추악한 단조로움이 혹시나 내가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은 아닐까.

그들이 나에게도 똑같은 죄수복을 입히려는 듯 덤벼들 때면, 차라리 거지의 신세가 되어 거리가 내 앉게 되더라도 그들과는 어울리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뿐이다.


평범함의 특이성을 발견한다.

돈.

권력.

명예.

성공.

모두가 이것을 향해 달리는 육상선수들처럼.

메달을 손에 넣기 위한 경쟁은 그렇게 시작되는 듯.

자신도 없고

남도 없는

그 역겨움이 싫어진다.


유일하게 거짓 없는 마음을 이야기하는 친누나와 만나

소주 한 잔에 이야기를 하면

좀 쉬는 게 어떠냐는 걱정 어린 말을 한다.

쉴 때도 됐다고.


마치 한 구석에 던져진 물건 같기도 하고, 길에 떨어진 넝마 쪽 같은 천덕스러움은 없지만, 어딘가 버려진 거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를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사람들 앞에 서면 그렇지 않은 척을 할 뿐이었다. 암울한 태양빛이 질풍처럼 쏟아져 나의 눈과 나의 시력을 태워린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요새 자주 찾아들고 있다.


확신에 찬 행동.

가장 분명한 생각.

가장 논리적인 의도.

어쩌면 이것들은 술주정이고 기질적인 광기.

어쩌면 거대한 무지일 뿐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하는 혼자만의 대화가 찾아오면 한낱 외로운 망명객에 지나지 않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들은 한순간이었을 뿐 이미 지나가버린 필름 조각일 뿐이다.

상영을 마친. 한 장의 스냅사진 같은. 흑백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이 발가 벗겨지는 밤이 불편하지 않아 졌다.

한줄기 가벼운 바람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겨울을 가르고 나리는 여러 갈래 공기층으로 조각나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본다.


커다란 식탁보를 흔들어 털어내는 것처럼

미세한 다이아몬드 가루가 검은 식탁보 사이에서 빛을 낸다.

흩뿌려진 그것을 주을 순 없다. 내 것이 아니니까.


쉽게도 넘어가는 달력처럼 그렇게 하루를 지워가며 살아가는 운명.

그것이 인간이라면. 오늘 밤이 너무 애잔하고 서글퍼지는 이유를 묻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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