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그 아이는 별로 주목을 끌지 않았다

가장자리에서 빛나는 것들에 대하여

by 구시안

얼음도, 눈도, 오래 묵은 마음의 상처도
네 손처럼 차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한때 차가움이란 닿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를 보며 알게 되었다.

닿을 수 없음은 차가움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품고 있는 것에 더 가깝다는 걸.


너는 빛이 났다.
소란을 밀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소란과 나란히 서 있으면서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 본 것 중 가장 조용히 빛나는 아이였다.




그 골목은 늘 소란스러웠다.
비린 생선 냄새가 공기 속에 얇게 깔리고, 녹슨 철문은 바람이 불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울었다. 쓰레기봉투를 헤집는 발톱의 마찰음이 밤의 바닥을 긁고 지나갔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고양이들은 각자의 울음으로 자신을 선언했다.


그 울음은 애원도 아니었고, 경고도 아니었다.
그저 사라지지 않겠다는 방식이었다.

검은 줄무늬가 번개처럼 스쳤다.
회색 수컷은 등을 활처럼 휘고 낮게 으르렁거렸다.
발톱이 허공을 갈랐고, 짧고 탁한 비명이 먼지 속에 섞였다.

달빛은 그 모든 움직임 위에 무심하게 내려앉았다.
아무 편도 들지 않는 얼굴로.


그 아이는 별로 주목을 끌지 않았다.

늘 가장자리의 벽돌 위에 앉아 있었다.
꼬리는 발등을 감싸고, 눈은 반쯤 감긴 채.

싸움은 늘 같은 방식으로 시작되고 같은 방식으로 끝난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덩치 큰 수컷들이 피를 묻히며 영역을 나눌 때에도
너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고개를 조금 기울일 뿐이었다.
마치 비가 오는 풍경을 보듯이.
막을 수도, 재촉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사람처럼.


발톱이 번뜩일 때마다

너는 한 발 물러났다.
도망이 아니라, 선택처럼.
네 몸은 작았지만, 네가 지키는 거리는 분명했다.


몸집은 크지 않았고, 털빛은 특별히 눈에 띄지 않았다.
검고 희었으나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았다.
우두머리가 될 상은 아니었다.
울음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네 눈에는 오래된 강이 흐르고 있었다.

영역의 싸움이 격해질수록 그 강은 더 깊어졌다.
너는 소란을 삼키지 않았고, 소란에 휩쓸리지도 않았다.
그저 흘려보냈다.


핏자국이 골목 바닥에 어둡게 번지면
승자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꼬리를 세웠고
패자는 절뚝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밤은 언제나 공평했다.
그리고 공평하다는 말은,
아무도 보호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모두가 흩어진 뒤에야
너는 천천히 자리에서 내려왔다.
상처 입은 고양이의 냄새를 스치고
떨어진 생선 가시를 물었다.

아무도 너를 밀치지 않았다.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너는 남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본다.
싸움이 끝난 뒤에도, 피가 식은 뒤에도,
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을 할 때에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가
곧 멈춘다.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크고,
동정이라는 말은 너무 가볍다.

어쩌면 그것은 동지애에 가깝다.


세상 한복판에서 한 발짝 물러나 서 있는 존재들끼리만
조용히 공유하는 감각.


왜 싸우지 않느냐고 묻고 싶어진다.
왜 네 존재를 더 크게 외치지 않느냐고.

그러나 묻는 순간 나는 부끄러워진다.
어쩌면 싸움은
확신 없는 것들이 자신을 붙잡는 방식일지도 모르니까.
존재를 증명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이들의 발톱일지도 모르니까.


너는 스스로를 증명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이미 충분히 존재하고 있었다.

세상은 큰 울음을 기억한다.
빠른 분노와 선명한 승패를 기록한다.
피 묻은 발톱은 오래 이야기되지만,
조용히 버틴 시간은 쉽게 잊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가장 크게 울부짖은 자가 아니라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킨 자라는 걸
나는 너를 통해 배운다.


너는 별로 주목을 끌지 않는다.
그래서 더 오래, 더 깊이 남는다.

나는 오늘도 그 골목을 지나며
네가 앉아 있던 벽돌 자리를 본다.
어쩌면 너는 이미 다른 밤으로 건너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남은 공기,
그 조용한 간격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빛은 늘 중심에서 터지지 않는다.
가장자리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틈에서
조용히 오래 남는다.


그 아이는 별로 주목을 끌지 않았다.

그래서
끝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빛은 언제나

소란 속이 아니라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남는 것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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