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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I feel empathy for you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공감하는 일

by 구시안

Empathy :


나는 네 눈 속에 잠긴 저녁을 본다.
붉게 타다 식어버린 별의 잔해처럼
말없이 흔들리는 빛.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네 숨은 바다의 파문처럼
내 가슴을 밀어 올린다.


나는 네 슬픔을 빌려 입는다.
너의 그림자를 어깨에 걸치고
타인의 꿈속을 걷는 방랑자처럼.


우리 사이엔
언어가 아니라
젖은 흙냄새와
아직 터지지 않은 번개의 기척이 흐른다.


공감이란
네 상처에 손을 얹는 일이 아니라,
잠시
내 심장을 내려놓고
네 고동을 듣는 일.


그리고
그 박동이
나의 것처럼
아프게,
빛나는 일.





연휴의 아침, 도시는 숨을 줄인다.
마치 누군가 거대한 유리 덮개를 씌워 둔 것처럼, 소리는 멀어지고 윤곽만 남는다.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는 본래부터 길이 아니라 기억이었던 것처럼 평평하게 누워 있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엘리베이터의 쇳소리, 멀리서 문을 여닫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실은 소리라기보다 ‘소리가 있었던 자리’ 같다.


연휴의 아침은 이상하다.
도시는 쉬고 있는데, 나는 쉬지 못한다.

고요는 밖에 있는데, 소란은 안에 있다.

나는 커튼을 조금 걷는다. 빛이 바닥에 얇게 스며든다. 그 빛은 따뜻하지 않다. 단지 존재를 증명할 뿐이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이 때로는 견디기 어렵다.


나는 어딜 가지 않고 집에 박혀 있는 것이 서럽지 않다는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예전 같았으면 어디론가 가야 할 것만 같았을 것이다. 사람들 틈에 끼어들어, 스스로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명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오늘의 나는 정지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움직이지 않음 속으로 흘러가고 있다.


큰 책방, 종로나 나갈까 생각한다. 연휴의 종로는 기묘하다. 북적임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건물의 뼈대만 남는다. 책장 사이를 걷다 보면 책이 아니라 종이의 체온을 만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현관문을 열지 않는다. 담배를 문다. 불꽃이 잠깐 살아 오르고, 그 불빛은 내 안의 무언가를 비추다 곧 사라진다.


연기가 천천히 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닌 허공을 떠다닌다. 나는 창밖을 본다. 이상하게도 공허감에 빠진 것은 도시가 아니라 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도시가 공허해 보이는 것은 내가 비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세상을 본다고 믿지만, 실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외부에 투사하며 확인할 뿐이다.


공감이란 무엇일까.

나는 종종 공감을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 조용한 아침, 나는 그것이 이해가 아니라 침묵의 겹침이라는 생각을 한다.

두 개의 고독이 잠시 나란히 놓이는 일.

설명하지 않아도,

설명할 수 없음을 함께 견디는 일. 그게 공감 아닐까.


나는 도시를 공감한다.
비어 있는 도로, 불 꺼진 간판, 닫힌 셔터들.
그것들은 오늘 일을 하지 않는다. 존재만 한다.
나 역시 오늘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존재만 한다.

어쩌면 공감은 ‘쓸모없음’을 공유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슬픔을 해결해 주지 못하면서도, 그 슬픔이 흘러가도록 곁에 서 있는 태도. 나의 공허를 채우지 못하면서도, 그것을 밀어내지 않는 자세.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려 애쓰기 전에, 자기 안의 낯선 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내 안에도 내가 모르는 방이 있고, 그 방에는 불 꺼진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연휴의 아침처럼 조용한 그 방에서, 나는 나를 마주 본다. 그리고 낯설어한다.


담배는 끝까지 타들어 간다. 재가 길게 매달린다.
나는 그것을 턴다. 마치 생각을 털어내듯이. 그러나 생각은 떨어지지 않는다.

도시는 여전히 고요하다.
나는 여전히 집 안에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고요가 나를 위로한다.


공감이란,
누군가를 끌어안는 일이 아니라
함께 고요해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나는 도시와 닮아 있다.
비어 있으나 무너지지 않았고,
조용하나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이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속에서,
같은 방향으로 조금씩 늙어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마 공감이란,
서로를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불가능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연휴의 아침은 천천히 낮으로 기운다.
나는 담배를 끄고, 물을 한 컵 마신다.

잠시 음악을 틀고

거리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사람들을 상상한다.

지금 집을 나서면 거리의 사람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그 안에서 같이 춤이나 추게.

어쩌면 그것도 공감이 아닐까.


여전히 도시는 냉소적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나의 상상은 좀처럼 현실이 되지 않는다.


종로로 가보자.

공감을 얻으러.


I feel empathy for you.

이 말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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