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들어가는 정원
혼자 있고 싶은 한 아이를 생각했다.
부모님의 그늘을 피해
처음으로 자기 그림자만 드리운 자리에 앉아
고개를 떨군 채 잠이 들고
그렇게 꿈이라는 세계로 스며들어
비로소 만나게 되는
하나의 정원.
내 마음속에는 오래전부터 정원이 하나 있다. 지도에도 없고, 계절에도 묶이지 않으며, 낮과 밤의 경계조차 흐릿한 곳. 그곳은 흙 대신 기억이 깔려 있고, 바람 대신 한숨이 불며, 햇살 대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내려앉는다. 나는 그 정원의 유일한 정원사이자, 때로는 길 잃은 방문객이 된다.
아침이 오면 정원은 희망의 연둣빛으로 젖는다. 희망은 어린 잎사귀처럼 여리고 투명하여, 손끝으로 스치기만 해도 금세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그 잎은 이상하게도 쉽게 시들지 않는다. 쓰러질 듯 휘청이다가도, 어제의 빛을 기억하며 다시 고개를 든다. 나는 그 잎을 바라보며 깨닫는다. 희망이란, 강해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워서 꺾이지 않는 것임을.
나의 정원에도 꽃은 핀다. 정원의 중앙에는 기쁨이 핀다. 기쁨은 꽃이다. 그것은 한순간에 만개했다가도 바람처럼 흩어지지만, 흩어질 때조차 향기를 남긴다. 웃음은 꽃잎이 되어 허공에 날리고, 그 향기는 오래도록 마음의 옷깃에 매달린다. 때로 나는 그 꽃을 꺾어 가슴에 꽂고 싶어 지지만, 손을 뻗는 순간 꽃은 빛으로 부서진다.
기쁨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게 두어야 하는 빛의 조각이기 때문이다.
정원의 그늘에는 슬픔이 자란다. 슬픔은 이끼다. 소리 없이 번지고, 촉촉한 기억 위에 은밀히 뿌리를 내린다. 나는 슬픔을 뽑아내려 여러 번 애써 보았지만, 그것은 손톱 밑에 초록빛을 남긴 채 다시 돋아났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이끼가 깔린 자리야말로 가장 부드러운 쉼터가 된다는 것을. 슬픔은 마음을 차갑게 만들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숨을 쉬게 한다. 그 위에 누우면 비로소 나는 나의 체온을 느낀다.
분노는 가시나무로 자란다. 붉은 가시는 햇빛을 머금고 번뜩이며, 무심히 스치기만 해도 상처를 낸다. 나는 종종 그 가시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정원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분노는 침입자를 막는 울타리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가시가 지나치게 무성해질 때, 나는 피 흘리는 손으로 가지를 쳐낸다. 지켜야 할 것은 상처가 아니라, 그 안에서 숨 쉬는 나 자신임을 알기에.
사랑은 정원의 가장 깊은 곳에 있다. 그것은 나무다. 뿌리는 과거로 뻗고, 줄기는 현재를 관통하며, 가지는 미래를 향해 뻗는다. 사랑은 사계절을 혼자 견디는 거목이다. 꽃이 필 때도 있고, 잎이 질 때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뿌리는 늘 어둠 속에서 물을 찾는다. 나는 그 나무 아래에 서서 자주 귀를 기울인다. 그러면 들린다. 수액이 흐르는 소리, 보이지 않는 약속이 이어지는 소리,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의 숨결.
후회는 잡초처럼 돋아난다. 뽑아도 뽑아도 다시 올라오고, 방심한 틈을 타 정원을 뒤덮는다. 그러나 어느 날,
나는 그 잡초에 작은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후회는 과거의 그림자이지만, 동시에 배움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그 씨앗은 흙을 비집고 나와 또 다른 선택의 길을 밝힌다. 그래서 나는 이제 후회를 완전히 없애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를 가꾸며, 다음에 피어날 꽃을 기다린다.
밤이 되면 정원은 깊은 남색으로 잠긴다. 두려움은 밤하늘의 안개처럼 내려앉아, 길을 흐릿하게 만든다. 나는 그 안갯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길을 잃을 때마다 별빛이 또렷해진다. 두려움은 빛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어둠이라는 것을, 나는 수없이 헤매며 배웠다.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이 정원은 나의 것이면서도 나를 넘어선 세계라는 것을. 나는 씨앗을 뿌리는 손이지만, 동시에 그 씨앗이기도 하다. 나는 나무를 가꾸는 정원사이지만, 결국 이 정원 안에서 자라는 한 그루의 나무이기도 하다. 감정은 나를 흔들지만, 그 흔들림이 곧 나의 성장이다.
바람이 분다. 기억의 흙먼지가 일고, 꽃잎 같은 웃음이 흩날린다. 나는 다시 호미를 들고 정원을 걷는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새로운 감정이 싹트고 있을 것이다. 기쁨의 새싹이든, 슬픔의 이끼든, 사랑의 어린 가지든. 나는 그것을 밀어내지 않고, 조심스레 맞이한다.
감정의 정원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늘 공사 중인 세계,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우주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계절을 배우고, 바람을 배우고, 결국 나 자신을 배운다. 흙을 묻힌 손으로 가슴을 만지면, 그곳에서도 작은 씨앗 하나가 고동치고 있다.
아마도 인간이라는 것은,
결국 자기 안의 정원을 끝없이 가꾸는 존재일 것이다.
저마다의 감정의 정원에서,
저마다 다른 계절을 지나며.
하나의 정원.
아무도 모르는, 아이만의 계절이 시작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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