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언어의 낙하

소리와 의미 사이에서 무너지는 존재

by 구시안

단어들의 소리의 내적인 공명.

세상의 다양한 음색의 조화.

그것들이

합쳐지거나

분리되거나

낙하하면서 발휘하는 위력.


서로 다른 문장의

의미 사이에 놓인 문장의 화려함.

서로 남긴 자취.

마음이라는 숲이 품은

어떠한 희망을

절대적인 고요속에 써내려가는 것.


터무니 없는 대담한 높은 벽 사이에서 나무들이 행렬과 창백한 불안 속에서, 완강한 자들에 거부당한 목소리의 고백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길 잃은 이들의 발소리는 물결치는 회색빛 도시의 들판 사이에 아무런 길도 내지 못하면서 마치 다가올 추억처럼 가볍게 들려온다. 가만히 바라보는 하늘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잦아들던 도시의 소음이 다시 들려왓고, 나무들이 열 지어 선 길가를 불안하게 헤매는 이름없는 개들이 보였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언제나

영혼에 달라붙어다닌다.

생각속에서조차

구부정하기 싫어

기지개를 켜며

머리를 흔들어 묵었던 밤의

부스러기들을 털어낸다.


하나의 실수인 양 모든 것이 잠들었다. 불안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은 존재하지 않고 창틀은 가장자리가 달그락거릴 정도로 유리를 흔들어 댔던 밤이 지나니 침묵하는 밤은 신의 무덤이 되어 사라졌다. 무한대의 한가운데, 확고한 한자리에 놓인 시계가 메마르고 공허한 반시간이 또 흘러갔음을 알려준다. 이 모든 것은 한순간이었을 뿐 이미 지나가버렸다. 빗소리에서 솟아난 정적이 지금 내가 바라보는 하늘 위로 잿빛의 단조로움을 점점 넓게 퍼뜨리고 있다. 음울한 건물 벽면과 열린 창문을 배경으로 검게 빛나며 떨어지는 물줄기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것들이다. 감각 없는 내 눈 앞에서, 내 인생의 때늦은 모든 일상 속 우연한 기회에 자연스럽게 걸쳤던 행복이라는 옷을 벗어던진다.


깨닫거나 떼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만족스러웠던 모든 순간마다

어쩌면 항상 슬펐던 이유를 찾을지도 모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의 일부는 지금 내 뒤에 서있다. 내가 서 있는 창문 안쪽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 한줄기 가벼운 바람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여러 갈래 공기층으로 조각낸다.

하늘 한 귀퉁이가 환하하게 밝아온다. 건너편 건물 창문의 조금 더러워진 유리 너머 밖에 걸린 달력이 여태 보이지 않닥가 지금은 뿌연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인다.


잊는다.

보지않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지.

노력.

인생.

더욱 밝아진 햇빛이 이제 거의 파랗게 갠 하늘을 드러낸다. 하지만 어디에도 평온은 없다. 몸을 씻듯 운명도 씻어주고, 옷을 갈아입듯 삶도 갈아줘야 한다. 먹고 자는 일처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리해야하고 한편 둔감하게 늘 똑같은 상태로 사는 이유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어 순응했기 때문도 아니다. 일상의 진부함을 벗어나기 위해 나무줄기 주위에서 나의 의식적인 무의식을 걷게 한다. 나는 머물고 싶은데 홀로 앞으로 나아가는 내 운명을 거닐게 하고, 나는 따라가지 않는데 홀로 흘러가는 내 시간을 거닐게 한다.


이런 피로는 마치 구름을 흩어놓은 바람처럼, 인생의 의미에 대한 생각과 미래의 희망을 위해 세워놓았던 모든 계획과 욕망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한줌의 재로 갈아버린다.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될 수 없는 누더기로 만들어버린다. 검고 순수한 외로움이 가득한 밤이 지나도 이렇게 밝은 대낮의 기운에도 삶의 불가사의에 우리는 상처 입고 여러모로 두려워한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고차원적이지 않으면서도

나를 더욱 갉아먹는다.


책을 읽고 꿈을 꾸고

글쓰기를 생각하면서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교양 있는 삶을 산다면

삶이 조용히도 흐르는 것을

지켜볼테지만,


너무 생각이 많아

권태에 빠지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만한 지옥이 더 있을까 싶다가도

인생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고결한 영혼을 그림자 안에 지닌다면

꽃잎에 앉은 먼지처럼

오후의 바람을 타고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저물녁의 무기력을 따라 내려앉아

그저 더 큰 것들 사이에 묻힌다면

즐거움도 슬픔도 없이

명료한 이해만 갖고 빛나는 태양과

머나먼 별들에

감사하면서 그렇게 된다면,

그 이상 원하지도

그 이상 바라지도

그 이상 되지도 않는다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열 손가락에 낙하하는

글이 되는

모든 단어와 문장의 연걸들에 위력이

가끔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알게된다.

나는 가끔

무엇이든 정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글이 무서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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