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열망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하루의 기록
불현듯 다가온 봄에는 앞당겨 일어나는 사건처럼 어둠이 빨리 내려앉기 때문에, 마치 하루 일과가 더 늦게 끝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면 나는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니 곧 일이 끝날 거라는 기대감을 일하는 도중에도 즐기려 한다. 하늘 높은 곳의 무수한 흔들림을 졸음 속에서 감지하고, 바닥이 닫히듯 밤이 닫히자 거대한 고요가 밀려와 나는 잠들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억에 속하는 것 같은 터무니없는 안락함을 느끼고, 숫자들을 더하거나 지워가며 하는 작업은 마치 잠들기 전 하는 독서처럼 편안하다. 태양이 환한 날은 좁은 골목길의 자주 찾는 카페에 앉아서도 넓은 들판에 있는 것처럼 싱그러운 날이 있다. 하늘이 흐른 날은 야외에 있어도 문 없는 집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아직 낮의 사물들 안에 있을지라도 밤의 왕림은 이제 쉬어야 한다는 내밀한 의식을 천천히 부챗살처럼 펼친다.
일하는 속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더 활기가 넘치는 날도 있지만,
내 운명이나 다름없는 줄 쳐진
커다란 노트 사이로
나이 든 소유의 한 줌의 세상과
접촉이 없는 오래된 집을 그리워하며
밤이 오길 기다린다.
이미 죽어버린 모든 과거를
가로지르면서도
실수 하나 없이 각종 항목에
체크를 올바르게 하면 좋겠으나,
특유의 무뚝뚝하지만
인내심 있는 태도로
커피를 내오고
밝은 하늘을 바라보며
드리워진 탁자의 그림자를 만져 보는 일도
그리 나쁜 시간은 아니다.
내가 인류를 위해 일하거나, 나를 위해 희생하거나, 문명이 지속되도록 자신의 목숨을 거는 사람도 아니고, 뿌리 깊을 필요가 없는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며, 현실 세계와 타인 따위는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정신이 꿈에 나타나는 것처럼, 끔찍한 악몽임을 모르고 살아가도 괜찮으련만, 그런 노력에 대한 보상을 잘 주지 않는 전쟁 같고, 생산적이고 활동적이여만 하는 노동에 기대어 사는 것도 주제넘은 행위는 되지 않는다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비루한 환상에 순응해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비겁하게 도 여기 머무를 수 있으며
살아남을 수 있다고 확신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멀리서 비치는 불빛 같은 떠오르는 해결책들을
상상력에 의존하며 살아가기도 할 테지만,
한구석에 던져진 물건 같고,
길에 떨어진 넝마 쪽 같은
보잘것없는 것들이 바람에 나부낄 때
내가 삶 앞에서 그렇지 않은 척을 한다면
비겁한 인간이 될 뿐이다.
부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사람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은 모든 불가능한 것들 중에서
가장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것이기에
나는 날마다 열망하는 것이고
슬픈 순간마다 체념하는 것이다.
암울한 태양빛이 질풍처럼 쏟아져
떨어지는 이 도시의 삶이
나의 눈과 나의 시력을 태워버린다 해도
따뜻한 봄과
나뭇잎의 검푸름 안에서
머물고 싶다.
마치
운명이 내민 의술의 손길이 나의 지병인
감성장애를 치유하는 효과라도 내는 것처럼
태양이 구름을 가르고
들판에 빛을 던지듯
나의 지난 삶을 돌이켜 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일임을
살아가며 생각했던 것들 중
가장 분명한 생각이라는 술주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작.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