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낮의 시작점

by 구시안

열기는 이미 내 안에 걸려 있다.

낮의 빛이 통과하는 가시 안에서

아직 젖어 있는 어둠을 움켜쥐듯

내려진 검은 커피를 마시는 아침.


하루의 일과를 생각하며

낮의 회반죽을 뜨는 시간.


잠시 앉아

관자놀이에 새겨가는

흘러갈 하루를 생각한다.


황금의 가스가 분출되는 도시의 전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색깔로 쌓여서

다가올 존재들을 생각한다.


타오르는 눈꺼풀에는

후드륵거리는 기도 따위는 없다.


여전히 목덜미에 걸려 있는

수수께끼 놀이를 하며

미래를 발설하는 꿈은

강철의 섬유에 쌓여

심장을 펌프질 한다.


거리를 수놓았던

노란색 가로등들이

회색등이 되어 꺼지고

표류하는 기운의 돛대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어딘가에 놓여있을 올가미를 피해

걸어야 하고

오늘의 바뀐 숫자를

보이는 형체의 목에 두른다.


작은 물고기처럼 득실 거리는 습기가

느껴지는 창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습격에

사뭇 놀라다가,

아침이 오면 바람 곁에 누운 자들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행렬을

바라본다.


아무 이름이 아닌 것으로

우리는 묶여 있는 듯

밝은 하늘 아래 그림자를 동행 삼아

지워지지 않을 것을 위해

철삿줄의 모든 가시들을

뛰어넘고 거스르며

자유롭게 마음과 육체를

이끌고 아수라장을 지나갈 것이다.


강해지고

강해지게 될

내가 소유한

소박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소유한 두 손이 움직일 하루를 잠시 그려본다.


삶 속으로 솟아올라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시달린

조각을

붙든다.


이름이 깨어

손이 깨어

오늘도 내게로 온다.


밤이 몰고 간

또 다른 나를 뒤로하고

자신에게로 돌아온

어김없는

모반 같은 비밀로 얼룩진

하루를 시작한다.


채워지지 않은

스스로에게 기대어지는

기교 없는

모든 변환하는 것이

천천히

내 등을 타고

오른다.


스며드는 종잇장 대신

낭비하는 입대신

다소 야생적인 채로 남은

육체를 일으켜

나무를 지나

사람을 지나

달궈지는 아스팔트에

누군가의 발자국을 밟고

빛의 압박이

장악하는 낮을 보내려 한다.


허가가 떨어진

반사광을 싣고

비스듬히 누워 걷는 그림자와 함께

나는 나와 다른 키를 하고

늘어지는 그것을 잠시 바라본다.


밤을 향하여

손가락 끝에는 방향지시전파가

나를 위해 작동하고

흔적과 흔적

회색을 흩뿌린

치명적이고 결정적인

태양에서 멀어져

우리를 뒤썩어 놓는

시간을 기다리며

또 다른

낮의 시작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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