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 무료

찰리와 나의 간격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를 만난 날

by 구시안

잠을 설친 다음날이면

그날을 좋아하지 않게 된다.

달아난 잠은

거짓말처럼 인간적인 면을

어디론가 가져가버리기에.


생명 없는 공기를

가득 채운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과는 다르게,

지독한 피로감에 싸인 채

두발을 질질 끌며 산책을 나선다.


순간순간 느끼는 혼란이

내면의 언어에 거대한

침묵을 얹어 놓는 주말을 맞는다.

그래도 오랜만에

주말 하루를 이렇게 보내게 되었다.

휴식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이 즐겨 찾는

넓은 공원을 찾지 않는다.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정원은

잠 못 이루는 밤과 밤 사이에서

이미 거닐었다.


책상에 오래 앉아 굽어진 허리를 편다.

나를 둘러싼 나무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큰 소리를 낸다.


바람에 떠돌아 다니는

자신의 자리에 붙어 있지 못하고

떨어진 초록잎이 사람이 되고 싶어

나와는 다르게

잠꾸러기가 되어 거리에 누워있다.


가벼운 바람이

나를 땅에서 쓸어내고

주위 풍경은 이미

태양이 잡아먹는다.

따사로운 바람이 분다.

내 입술은

밤에 누군가 풀을 붙여놓은 것처럼

굳게 다물어져 있다.


자주 찾게 되는 골목길의 계단을 오르며

정취에 물들어 본다.

지나가던 한두 사람이 마치 나를 알고 있는 양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지만 상관없다.

표면을 두 손으로 비벼댄 것처럼

뻑뻑한 눈꺼풀 속의 눈으로

나 역시 그들을 막연하게 바라보았으니.


여전히

찰리라 이름 붙인 녀석은

길을 배외하고 있었다.

벽을 보고 앉아 가장 따뜻한 곳을 찾고

자신의 엉덩이를 붙였다.

네가 살아가는 세계도

불안전하고

도덕적으로 혼란하고

정치질하는 냥이들이 있냐고 묻는다.


어떠한 근심이 있는 듯 보이는

찰리는 그저 한 곳만 응시할 뿐이다.

냐옹. 냐옹.

그래. 그래.


이 우연하고 상징적인

동물을 잠시 옆에 쭈그려 앉아

한 참을 바라본다.


믿음과 비판을 연결하는 길 중간에

마치 이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오두막에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이 녀석을 바라본다.


어떤 대상을 믿음 없이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런 존재가 있다면

찰리 같은 존재이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갖지 않아 부럽다.

닫혀 있는 모든 문 중에서

어떤 문이 찰리에게 열릴지는 모르나

나는 아니다.

세상에는 거리를 두어야 할

존재의 간격이 있다.

찰리와 나처럼.

녀석이 선택한 자유를

방해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우연이 만나게 되면

하루의 잠깐 이 정도 붙어있다가

떨어지는 것이다.


쪼그려 앉아 가만히 있는

이 자세가 우리 둘에게 아무 쓸모없는

의식 활동처럼

기쁨을 주지는 못하나

잠시 고통의 존재를 잊게 해 주길 바라면서.


바람이 분다.

고요하고

차분하게 만드는

부드러운 바람이.


무슨 수를 써도 거부하거나 막을 수 없는 완강한 법칙이 지배하는 듯, 모든 노력이 다 소용없다는 인식과 이 것이 내가 살아가고 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의 문명의 절정이라면, 찰리와 나처럼 잠시 쭈그려 앉아 가만히 있는 것도 신들의 변덕으로 채워진 족쇄의 무게를 잠시 덜어 놓는 시간을 갖는 것도, 운명이라는 철의 손 아래 복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잠시 주어진 평화를 함께한다.


하늘은 언제나 아득히 멀고

삶은 언제나 다른 곳에 있기에

찰리의 작은 네 발과

나의 두 손으로 잡고 기댈

누군가의 손을 원하기도 할 테지만,

찰리와 나는 이미

그것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공허한지를

깊이 깨달은 듯.

말없이 그렇게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성공이라는 허울에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자유롭게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은 없다.

책을 내지도 못하고

글을 자유롭게 쓰지도 못하는

지금의 삶을 오히려 그리워할 것이기에.


고유한 즐거움이

원래처럼 좋지 못하더라도

특별하지 않아

결국 놓쳐버린 것이 되어도

상관없다.


이런 시간이 잠시 주어진다면

이 생생한 햇빛도 얼마 지나면

스러지는 저녁에 희미한 그림자 속으로

변해가는 도시의 모습 사이로

그 힘을 다하기 전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그림들은

결코 완결되지 않을 이야기를

느긋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찰리는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지고

나는 꿈꾸었던 책들 사이를

동시에 걸어간다.


휘어진 거리가

죽어있는 가로등 불이 켜지기 전까지

추상적인 길의 포근한 대기 속에서

감정선 한 자락만이

멍청한 운명이 흘리는 침방울처럼

이미 밤이 깊어가는 도시에는

다른 삶들이 새겨져 있음을 바라보며.


비현실 적인 햇살 아래

지각해도 좋은

비유적으로 계속 걷는 일을 선택한다.





Petite valse


아침 산책에 듣고 있는 음악입니다.

앙드레가뇽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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