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무모함과 패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정말 가진 것 하나 없는데도 이상하리만큼 자신감만 가득했습니다.
“돈이 뭐 그렇게 중요해. 돈이야 벌면 되고,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거 아니야?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부자들은 무조건 돈, 돈, 돈.
정도 없잖아. 가난해도 서로 나누며 정 있게 사는 게 더 행복한 거지.
우린 행복하려고 사는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심지어 돈을 나쁜 것처럼 치부하며 멀리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조금씩 더 먹다 보니 돈의 중요성을 제대로 체감하는 중입니다.
돈은 ‘있다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냥 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난은 가지고 있던 정도 점점 앗아갑니다.
돈보다 중요한 가치들을 돈이 없어서 포기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순간도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는 일도 결국 돈이 필요하더군요.
그렇게 저는 어릴 때 그렇게도 싫어했던 모습,
흔히 말하는 돈무새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에게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공짜로 받지는 않습니다.
제 돈이 소중하듯 남의 돈도 소중하니까요.
삼십 살이 훌쩍 넘고부터 친구들과의 격차가 서서히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싱겁게 웃고 떠들던 친구들이 어느새 대기업에서 몇 년 차 직장인이 되었고
또 어떤 친구는 유명인이 되어 수십억을 벌기도 했습니다.
그런 대단한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건 너무 큰 행운이지만,
때로는 그 행운들 사이에서 홀로 잎이 세 개뿐인 자신을 발견하며
나머지 한 잎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수십억을 번 친구는 친구들에게 돈 쓰는 것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질 좋은 소고기며 고급 술이며 예쁜 공간까지 모든 것을 내주었고
‘대방어 먹고 싶다’ 툭 나온 혼잣말에 어느새 내 눈앞에 대방어가 생겨 버리는
마법 같은 일까지 보여 주었습니다.
자주 못 보니까 오히려 만나는 동안만큼은 좀 더 좋은 것을 사 주려고 했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겼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돈을 쓰려하면
“나는 돈이 많아. 너무 많아. 괜찮아.”
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이기도 했지만 친구들이 혹여나 미안해할까 봐 하는 말이라는 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불편했습니다.
‘나도 나중에 한 번은 사야지.’
이런 마음이 당연히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사람은 참… 못된 것엔 빠르게 적응을 합니다.
어느새 그 친구가 결제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결제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돈도 아니고 그만한 능력도 없는데,
이상하게 그 친구가 사 주는 큰 금액에는 더 이상 감흥조차 없어진
나를 보게 됐습니다.
어느새 그 친구의 마음과 정성을 보지 않고
그 친구의 돈을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은 각자 담아낼 수 있는 ‘마음 그릇’의 크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릇 이상으로 무언가를 채우면
그건 결국 다 흘려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친구의 돈과 베풂은 제 그릇 이상으로 컸고
저의 공간은 좁았고
그 작은 공간을 돈으로 가득 채워
정작 그 안에 담아야 할 마음들은 다 흘려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호의 앞에서 너무 쉽게 익숙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돈이 아닌 그 사람이 내어준 마음을 먼저 담아 보려 합니다.
내 그릇의 어느 부분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는지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려고 합니다.
돈이 아니라 마음을 흘려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적절히, 온전히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