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세상엔 이렇게나 많은 기념일들이 있다.
나는 성격이 무던하다 못해 무딘 편이라
연애 초반부터 이런 특별한 날들을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이제는 어느덧 5년 차가 되니 더더욱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되었고
애초에 무언가 잘 챙기는 성격도 아니었다.
저런 건 다 상술이니 넘어가지 말자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일은 11월 11일 빼빼로데이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아도 길거리를 걷다 보면
편의점과 슈퍼에서 온통 앞세워 광고를 하니
모를 수가 없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늘 지나쳐왔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회사 동료 중 한 분이 올해 아버지가 되셨는데
오늘은 작은 고민을 하고 계셨다.
정말 별거 아닌 아주 귀여운 고민이었다.
“빼빼로를 아내에게 선물해주려고 하는데요,
내일 빼빼로데이라서 오늘 저녁과 내일 저녁 중 언제 줄지 고민이에요.
내일 퇴근하고 주면 너무 늦을 것 같고
오늘 주자니 당일이 아니라서… 정말 고민되네요.”
“음, 내일 늦게 보단 오늘이 더 낫지 않을까요?
편지는 쓰실 건가요? 빼빼로만 주는 것보다
짧게라도 편지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네, 글 솜씨가 좋지는 않아서… 짧게라도 써보려구요.
점심시간에 다녀와야겠어요.”
동료는 그 귀한 점심시간을 내어
빼빼로와 함께 줄 카드를 사 왔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사실 유일한 숨구멍 같은 시간인데
오늘만큼은 그 숨을 하루 종일 참을 각오를 했나 보다.
그리고 사 온 건
귀여운 캐릭터가 얹어진 야구방망이 모양 빼빼로와
아몬드 빼빼로였다.
“어때요? 귀엽죠?”
“네, 귀엽네요. 아내 분 주실 건가요?”
“이 방망이는 우리 딸 줄 거고 아몬드 빼빼로는 아내 줄 거예요.”
“편지는 쓰셨어요?”
“네, 짧게 두 줄 정도요.”
동료가 쓴 편지를 보여주었는데
저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글은 짧았지만 사랑이 가득 담긴 편지였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여보는 단 걸 많이 못 먹어서 결국 내가 먹게 될 테지만 그래도 여보 거야. 사랑해.
사랑하는 유라에게
아빠가 처음으로 주는 빼빼로네. 유라 거지만 사실 아빠 거야. 사랑해.
그리고 빼빼로가 얹어진 방망이를 들고 퇴근하는 동료의 뒷모습은
너무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그 뒷모습에서 사랑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고
그 반응을 상상하며 고민하는 하루가
어쩌면 이미 선물 같은 하루였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들어진 기념일을 핑계 삼아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면
이 정도의 상술이라면
속아 넘어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