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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코치 Jul 14. 2022

기말고사=기말고死?

부모로 사는 이야기

#기말고사 #시험이인생의전부는아니야

#결과는결과일뿐 #여전히사랑스러운아이들


1년에 한두번쯤 아이들의 학교를 방문한다.

별다른 일은 아니고, 학부모 상담이 있거나 시험감독을 하는 일이 있을 때이다. 오늘은 후자. 몇 주 전 가정통신문을 내밀던 아이의 말.


"엄마, 바빠서 못 오죠? 근데 하루라도 와주면 어때요? 이거 두 번째 통신문인데 엄마들 지원자가 없대요."


워낙 무언가를 조르거나 강요하지 않는 아이가 이 정도로 얘기한 건 되게 강력한 요청이다. 마침 시험기간 3일 중 하루는 시간을 낼 수 있었고, 그날이 오늘이었다.


아이의 학교이자 내 모교인 학교는 갈 때마다 기분이 묘하지만, 내 학창시절을 떠올릴 만한 건 화단의 나무 정도다. 새로 생긴 건물, 새로 들인 책걸상(책상이 높이 조절된다는 사실을 오늘 알고는 마스크 속에서 혼자 적잖이 놀랐다), 최신식 시설들까지. 복도 어느 한 구석에도 30년 전의 흔적은 당연히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출신 학교라는 사실이 주는 묘한 그리움과 설렘은 30년이나 차이나는 후배들에게마저 동질감을 느끼게 할 만큼 쎄다. 아니, 후배가 아니라 딸의 친구들이어설까?


지리한 감독 시간 동안 나의 놀이는 교실 속 아이들을 훔쳐 보는 것. 5분만에 답안지를 교체한다는 아이, 10분도 안 되어 누워자는 아이, 머리를 쥐어 뜯는 아이, 몇번이고 끝날 때까지 검토하는 아이, 시험지에 작품을 그려넣는 아이까지. 표정도, 자세도, 행동도 제각각인 아이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났다. 과연 아이들은 각자의 사랑스러움을 타고나는 듯.


그러다가 다다른 곳은 칠판 한 구석...


기말고死: D-Day

                    I

                   E



그래. 시험을 못 보면 죽을 것 같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던 시절. 그것 밖에 몰랐던 시절. 이 아이들 그 때를 살고 있나보다. 쉬는 시간 복도를 지나는 내게 아이의 친구가 와서 인사를 한다. 이름을 기억하는 아이라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했더니, 아이는 어떻게 자기 이름을 기억하시냐며 반가워하더니 이내 안기면서 하는 말이.


"저 어떡해요. 완전 망했어요. 이제 끝났어요."


그러고보니 눈이 벌겋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울었댄다.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를 연발했지만 지나가는 친구 엄마의 토닥임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으랴.


한편,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할 거라며, 보고싶은 넷플릭스 드라마를 볼 거라며, 오답노트도 오늘은 안 할 거라며 시험이 끝난 자유를 만끽하는 아이가 반갑다. 결과는 결과일 뿐 니가 아니니까를 속으로 외는 나도, 비록 긴장도 했지만 신나게 이 과정을 넘고 즐기는 아이도 참 고맙다. 아이들의 배움의 과정이 즐겁기를,  아이들이 이 과정 속에서 국영수사과가 아니라 삶의 묘미를 배우고 경험하기를.


이러면서도 어젯밤 즐겁게 수다를 떨며 공부한다고 앉은 두 딸들에게 대체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며 잔소리를 한 나란 엄마는 아무리 배우고 노력해도 모자란 엄마고, 어디선가 나도 모르게 내 글을 읽을 딸들은 또 웃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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