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사람은 사랑을 통해 자신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어떤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몰랐던 마음을 배우기도 하고, 내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 사람인지, 얼마나 깊이 아낄 수 있는 사람인지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사람이 조금 더 넓어지고,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깊어질 수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사랑은 분명 한 사람의 내면에 변화를 일으키는 경험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사랑을 “완성”의 언어로 말한다. 누군가를 만나 비로소 알게 된 나, 이전보다 더 나아진 나, 사랑을 통해 성장한 나. 사랑은 내 삶을 충만하게 만들고, 내 안의 빈 곳을 채우고, 아직 덜 완성된 나를 조금 더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감각 자체가 아주 낯설거나 잘못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배우고, 타인을 통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는 사랑을 오래 생각할수록, 사랑을 “나를 완성하는 일”로 말하는 데에는 조심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말은 너무 쉽게 사랑의 중심을 나 자신에게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더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이전보다 더 온전해진 듯 느끼기 위해 사랑을 붙드는 순간, 사랑은 어느새 타인을 향한 마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서사가 된다. 상대는 내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이자 수단이 되고, 관계는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확인하는 장면이 된다.
나는 사랑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변화는 사랑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여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성장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진심으로 만나려는 과정 속에서 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상대의 실제 모습을 오래 바라보는 동안 내 시선이 넓어지고, 내 기대와 다른 사람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동안 내 마음이 조금 더 깊어지는 것. 사랑이 나를 바꿀 수는 있어도, 그 변화가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이 순서다.
사랑이 나를 완성하는 일이라고 믿게 되면, 상대는 쉽게 나의 결핍을 보완하는 존재가 된다. 나는 이 사람을 통해 더 괜찮아지고 싶고, 덜 외로워지고 싶고, 더 충만해지고 싶어진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사랑 안에서 위로를 받고, 채워지고, 이전보다 덜 고독해질 수 있다. 그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사랑을 그런 효과 중심으로 붙들게 되면, 어느새 상대의 실제는 흐려지고 내가 얻는 감정적 의미만 또렷해진다. 이 사람은 내게 무엇을 주는가, 이 관계는 나를 얼마나 달라지게 하는가, 나는 이 사랑을 통해 얼마나 더 나은 사람이 되는가. 그 질문들만 남으면 사랑은 타인을 향한 일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더 잘 느끼기 위한 방식이 된다.
나는 사랑이 결핍을 채우는 일로만 이해될 때, 관계가 쉽게 버거워진다고 생각한다. 상대는 더 이상 한 사람이 아니라, 내 안의 빈 곳을 메워야 하는 책임을 떠맡은 존재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나를 덜 외롭게 해야 하고, 나를 더 안전하게 해야 하고, 나를 더 괜찮은 사람처럼 느끼게 해야 하는 사람. 하지만 누구도 그렇게까지 타인의 삶을 대신할 수는 없다. 사랑은 가까운 관계일 수는 있어도,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구원이 되어야 하는 관계는 아니다. 그 기대가 커질수록 사랑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상대는 사람으로 남기보다 기능으로 변해간다.
어쩌면 사랑이 나를 완성한다고 느끼는 순간의 달콤함은, 사실 내 불완전함이 잠시 덜 선명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나를 아껴주는 시선이 있다는 사실, 내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경험은 분명 사람을 안정시키고 위로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 나 자신의 미완성을 대신 해결해준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사랑은 삶을 견디는 힘이 될 수는 있지만, 내가 나를 마주해야 하는 일 자체를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그래서 사랑을 완성의 언어로만 붙드는 것은 때로 위험하다. 내가 혼자서는 감당해야 할 몫까지 관계 안으로 밀어 넣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사랑이 나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사랑을 더 진실하게 만든다고 느낀다. 사랑이 나를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상대는 나를 위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삶을 가진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 사람은 나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마음과 세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 사랑은 그 사람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보다, 그 사람을 실제로 얼마나 만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그러면 사랑의 질문도 조금 달라진다. “이 사람은 나를 얼마나 충만하게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이 사람을 얼마나 실제로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해진다.
사랑은 나를 완성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은 나를 완성해야 할 의무가 없다. 사랑은 내 빈 곳을 전부 메워주지도 않고, 내 불안을 완전히 없애주지도 않고, 내 삶의 모든 모순을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귀한 이유는, 그것이 나를 완성해서가 아니라 내 바깥에 있는 한 사람을 통해 내가 세계를 조금 다르게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만이 중심이던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게 하고, 타인의 실제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배우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를 완성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코 혼자만의 이야기 속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경험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을 완전히 버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싶다. 사랑은 나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내 중심성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하는 경험이다. 내 기대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동안, 내 감정만이 전부가 아님을 배우는 동안, 내 방식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한 사람의 현실을 존중하는 동안, 사람은 결과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만남의 깊이에서 따라오는 것이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진짜 사랑은 나를 덜 중요한 사람으로 만드는 경험일지도 모른다. 이 말은 나를 낮추거나 지우자는 뜻이 아니다. 다만 사랑 앞에서만큼은 내가 언제나 중심일 수 없다는 뜻이다. 내 감정, 내 해석, 내 욕망이 늘 우선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내 바깥에 있는 누군가가 충분히 낯설고, 충분히 복잡하고, 충분히 소중한 현실로 등장하는 순간, 나는 내 삶의 유일한 중심으로 남아 있지 못한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은 바로 그 자리를 배우게 한다. 내가 조금 비켜서고,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자리 말이다.
그러니 사랑은 나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내 완성에 대한 집착을 조금씩 내려놓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내가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부족한 채로도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완전히 준비된 사람이 된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 아니라, 아직 미완인 채로도 상대를 중심에 두는 법을 조금씩 익혀가는 일. 나는 아마 그런 사랑을 더 믿고 싶은 사람이다.
결국 사랑이 내게 의미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줘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은 내가 나 자신에게만 머무르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내 안의 세계를 벗어나, 내 바깥의 한 사람을 실제로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사랑은 나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다. 사랑은 내가 완성되어야만 시작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사랑은 다만, 내 바깥에 있는 한 사람을 향해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고,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조금 달라질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준 선물일 뿐, 사랑이 수행해야 할 목적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사랑을 통해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 사랑 안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를 더 묻고 싶다. 내가 이 관계를 통해 얼마나 채워지는가보다, 내가 얼마나 한 사람의 실제 앞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싶다. 사랑은 나를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내 바깥의 한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일이다. 나는 아마 이 문장을 오래 붙들고 살아가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