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실제 모습을 본다는 것

11장.

by 경영 컨설턴트 Tim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실제의 사람’만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바라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안에는 언제나 내가 기대하는 모습,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 내가 좋아하는 결의 사람이 함께 섞여 있다. 나는 너를 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내가 보고 싶은 너를 더 또렷하게 보고 있을 때도 있다. 사랑이 어렵고도 섬세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그 사람과 동시에,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까지 함께 마주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실제 모습을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뜻도 아니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을 익숙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 일에 가깝다. 내가 생각한 너와 실제의 너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그리고 그 차이를 성급히 지우지 않으려는 일. 내가 기대한 모습과 다른 모습이 나타났을 때 쉽게 실망으로만 해석하지 않고, “이 사람은 원래 이런 사람이어야 하는데”라는 내 마음의 문장을 조금 늦추는 일. 사랑은 어쩌면 그 늦춤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자기 이해의 범위 안에 두고 싶어 한다. 그래야 마음이 덜 불안하고, 관계가 덜 흔들린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너,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너, 내가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너는 사랑하기가 더 쉽다. 하지만 실제의 타인은 언제나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조금 더 낯설고, 조금 더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날은 내가 아는 사람 같다가도, 또 어떤 날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사랑은 바로 그 낯섦을 견디는 일과 가깝다. 내가 다 안다고 믿는 순간보다, 내가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관계는 오히려 더 진실해진다.


상대의 실제 모습을 본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을 내 서사에 맞게 정리하지 않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은 관계 안에서 자꾸만 의미를 만들고 싶어 한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해석하고, 그 해석 속에서 관계의 방향을 읽어내고, 나름의 문장으로 상대를 규정한다.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이럴 때는 이런 뜻일 것이라고, 결국 이 관계는 이런 모양일 것이라고. 그런 해석은 필요하다. 사람은 아무 해석 없이 관계를 살아낼 수 없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해석이 너무 빨리 굳어질 때다. 내 해석이 곧 상대의 실제인 것처럼 믿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만든 문장 속의 사람이 된다.


그래서 사랑에는 자주 수정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내가 알던 너가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 내가 이해한 너가 아직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지금 내 마음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너의 어떤 모습도 결국 너의 일부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 말이다. 이 수정은 쉽지 않다. 사람은 관계 안에서 안정감을 원하고, 익숙한 이미지를 붙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의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을 내 이해에 맞게 고정하는 대신 계속 다시 만나는 일에 가깝다.


나는 사랑이 무너지는 많은 순간이, 상대를 더 이상 실제의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되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보다,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더 중요해질 때. 그 사람의 복잡함보다, 내 서운함과 내 기대가 더 선명해질 때. 그러면 관계는 점점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해진다. 상대는 내가 이해한 몇 가지 문장으로만 남고, 그 문장 바깥의 낯선 현실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사랑은 그때부터 타인을 향한 일이 아니라, 내 해석을 지키는 일이 된다.


상대의 실제 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래서 종종 불편한 일이다. 왜냐하면 실제의 사람은 언제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바랐던 속도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기대한 만큼 표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납득하고 싶은 방식으로 마음을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때는 나와 아주 다른 결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이 더 선명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랑은 바로 그 불편함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그 불편함 속에서도 이 사람을 한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묻는 일에 더 가깝다.


물론 상대의 실제 모습을 본다는 것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고, 관계는 모든 차이를 견디는 의무도 아니다. 오히려 실제의 사람을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한계도, 나와 맞지 않는 부분도, 내가 끝내 감당할 수 없는 거리도 함께 본다는 뜻에 가깝다. 사랑은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눈을 감는 일이 아니라, 눈을 뜬 채로도 이 관계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선택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실제를 본다는 것은 미화도 아니고 희생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상대를 나의 필요나 기대보다 앞에 두는 태도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랑받고 싶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기를 원한다. 내가 설명되지 않는 부분까지, 내 모순과 서툼까지, 내가 나답게 존재하는 방식을 누군가가 함부로 줄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결을 가진 한 사람으로 보려는 노력. 내가 이해하기 쉬운 사람으로 만들기보다, 완전히 이해되지 않아도 그 사람의 현실을 존중하려는 태도. 사랑은 어쩌면 바로 그 대칭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상대의 실제 모습을 보는 일에는 겸손이 필요하다. 나는 너를 다 알지 못할 수 있다는 겸손, 내가 느낀 서운함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겸손, 내 기대가 옳다고 해서 그 기대가 곧 너의 의무는 아니라는 겸손. 사랑은 종종 마음의 크기로만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이런 겸손 없이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마음이 아무리 커도, 상대를 내 기준 안에만 두고 보려 한다면 관계는 쉽게 숨이 막힌다. 반대로 내가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사랑은 조금 더 넓고 조용한 자리를 갖게 된다.


나는 사랑이란 결국 한 사람을 다 아는 일이 아니라,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견디면서도 여전히 그 사람을 향해 있으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실제 모습을 본다는 것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해석보다 존재를 앞세우는 태도다. 내가 설명한 너보다, 실제의 너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일. 내가 기대한 너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를 더 오래 바라보는 일. 사랑은 아마 그 시선에서부터 조금씩 진짜가 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중심이 결국 상대방이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상대를 중심에 둔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내 감정의 배경으로 쓰지 않는다는 뜻이고, 내 서사에 맞게 다듬지 않는다는 뜻이며,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만 존재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랑은 나를 더 빛나게 하는 일이 아니라,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함부로 단순화하지 않는 일에 더 가깝다.


나는 사랑할 때 내가 느끼는 감정보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더 자주 돌아보고 싶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이 사람인지, 아니면 내가 상상한 사람인지. 내가 만나고 있는 것이 살아 있는 한 사람인지, 아니면 내 기대와 해석이 만든 이미지인지. 아마 사랑은 그 질문을 계속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 속에서 조금씩 더 깊어질 것이다.


상대의 실제 모습을 본다는 것은 결국, 사랑을 내 마음의 진실만으로 증명하지 않겠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보다, 내가 얼마나 한 사람을 실제로 보려 애쓰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는 뜻. 나는 아마 그런 사랑을 더 오래 배우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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