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대와 다른 너를 받아들이는 일

12장.

by 경영 컨설턴트 Tim

사랑은 종종 닮은 마음을 꿈꾸게 한다.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느끼고, 비슷한 속도로 다가오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비슷하게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바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 안에서 이해받고 싶고, 낯섦보다 익숙함 속에서 안심하고 싶어 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시작할 때 종종 무의식적으로 기대를 만든다. 이 사람은 이럴 것이라고, 이런 순간에는 이렇게 반응해줄 것이라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관계는 대체로 이런 모양일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의 사랑은 대개 그 기대를 조금씩 흔든다. 내가 바라던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장면을 같은 무게로 여기지 않는 사람, 내가 상처라고 느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하고, 내가 쉽게 넘기는 것을 깊이 아파하기도 하는 사람. 사랑은 누군가를 통해 닮음을 확인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서로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를 배우게 하는 경험에 더 가까워진다.


어쩌면 사랑이 진짜로 시작되는 것은 바로 그때인지도 모른다. 내 기대와 다른 너를 만났을 때. 내가 상상한 너가 아니라, 실제의 너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 그 순간 사람은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상대를 내가 이해하기 쉬운 모습으로 다시 밀어 넣으려 하거나, 아니면 내 기대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한 사람의 실제를 다시 배우기 시작하거나. 사랑은 아마 이 갈림길에서 그 본질을 드러낸다.


사람은 기대가 어긋날 때 쉽게 실망한다. 실망은 단순히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믿고 있던 관계의 문장이 흔들렸다는 감각에 가깝다. 나는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줄 알았던 마음이 틀어질 때 관계는 갑자기 낯설어진다. 그 낯섦 앞에서 우리는 자주 상대를 보려 하기보다, 먼저 내 기대가 무너진 사실을 붙든다. 왜 이렇게 다르지, 왜 내가 생각한 방식이 아니지, 왜 내 마음을 이만큼은 알아주지 않지. 그러다 보면 실제의 사람보다, 기대에서 벗어난 사실 자체가 더 커진다.


하지만 사랑은 상대를 내 기대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내 기대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에 더 가깝다. 물론 기대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기대는 관계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고, 함께 가까워지고 싶다는 소망에서 나온다. 다만 그 기대가 너무 단단해지면, 우리는 어느새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관계는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상대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보다, 사랑받기 위해 내가 만든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사람이 된다.


내 기대와 다른 너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이해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중심을 정말 나에게서 상대에게로 옮길 수 있는가를 묻는 일에 더 가깝다. 내가 원했던 방식이 아니더라도, 이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허락할 수 있는가. 내가 익숙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내 상상과는 다른 결을 가질 수 있음을 견딜 수 있는가. 내가 사랑받고 싶은 방식만이 사랑의 유일한 방식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결국 이것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시도이기 전에, 내가 관계의 기준이기를 멈출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받아들인다는 말은 모든 차이를 무조건 품으라는 뜻이 아니다. 사랑은 무한한 포용이 아니고, 나 자신을 계속 접어가며 상대를 정당화하는 일도 아니다. 어떤 차이는 조율될 수 있고, 어떤 차이는 끝내 견디기 어렵다. 어떤 다름은 오히려 관계를 넓히지만, 어떤 다름은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포기 없이 버틴다는 뜻이 아니라, 먼저 실제를 실제로 보는 데서 시작하는 태도에 가깝다. 이 사람은 내가 기대한 사람이 아니구나.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제 정말 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구나. 사랑은 아마 이 인정에서부터 더 정직해지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달라고 말한다. 내가 서툰 부분까지, 내가 설명되지 않는 부분까지, 내가 나답게 존재하는 방식을 누군가 함부로 고치려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같은 질문 앞에 서야 한다. 나는 이 사람의 다름을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나는 이 사람이 내 기대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 뒤에도 여전히 이 사람을 향해 있을 수 있는가. 사랑은 결국 그 사람의 좋은 점만이 아니라, 나의 기대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 부분까지 포함해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기대와 다른 너를 받아들이는 일에는 애도의 마음도 조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상했던 관계, 내가 바라던 방식, 내가 은연중에 그리고 있던 너의 이미지가 실제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은 아주 작게라도 상실을 경험한다. “이럴 줄 알았는데”라는 문장이 더는 유지되지 않는 순간, 우리는 조용히 어떤 기대를 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기대를 놓지 못하면, 실제의 사람은 늘 부족하거나 아쉬운 사람으로만 남게 된다. 사랑은 때로 그 애도를 통과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내가 원했던 너가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는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얼마나 비슷한 사람을 만났는가보다, 얼마나 다른 사람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닮음은 사랑을 시작하게 만들 수 있지만, 다름은 사랑을 깊어지게 한다. 내가 알던 방식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고, 그 낯섦 앞에서 도망치지 않으려 할 때, 사랑은 비로소 내 감정의 확장이 아니라 타인과의 만남이 된다.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이 관계의 장애물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다름 덕분에 나는 사랑이 나 자신을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어쩌면 사랑은 결국, “왜 나와 같지 않지”라는 질문에서 “그렇다면 이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으로 건너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전자는 내 기대를 중심에 둔 질문이고, 후자는 상대의 실제를 중심에 둔 질문이다. 사랑의 중심은 결국 상대방이라는 문장은 아마 이 전환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확인하는 대신, 이 사람의 방식과 결을 배워가는 일. 내가 만든 관계의 모양에 사람을 넣는 대신, 이 사람과 함께 새로운 모양을 배워가는 일.


나는 여전히 내 기대와 다른 사람 앞에서 쉽게 흔들릴 수 있다.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서운해하고, 때로는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정말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이 사람을 내 기대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가, 아니면 내 기대와 다른 이 사람 자체를 만날 수 있는가.


아마 사랑은 그 두 번째 쪽으로 조금씩 걸어가는 일일 것이다. 내 기대를 완전히 버리는 일은 아니더라도, 그 기대가 한 사람의 실제를 지워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 내가 바라는 관계를 붙드는 것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더 정확히 보려는 일. 사랑은 나와 비슷한 사람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나와 다른 한 사람을 함부로 줄이지 않는 일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사랑할 때, 나와 얼마나 잘 맞는 사람인가만큼이나 내가 얼마나 이 사람의 다름을 존중할 수 있는가를 묻고 싶다. 사랑은 결국 닮음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름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깊이가 결정된다. 내 기대와 다른 너를 받아들이는 일.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랑이 나 자신을 넘어 진짜로 타인에게 닿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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