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없이 가능한 사랑은 드물다

13장.

by 경영 컨설턴트 Tim

사람은 사랑 안에서 평온을 꿈꾼다. 나를 잘 이해해주고, 내 마음을 자연스럽게 알아주고, 큰 설명 없이도 서로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관계를 바란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덜 외롭고, 덜 긴장하고, 덜 방어적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흔히 안온한 감정과 연결해서 생각한다. 사랑이라면 나를 쉬게 해주어야 하고, 사랑이라면 나를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물론 그런 바람은 자연스럽다. 사랑은 삶의 또 다른 전장이 아니라, 적어도 잠시 기대어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늘 피로와 긴장만을 남긴다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사랑 안에는 분명 위로와 안정, 그리고 함께 있을 때 조금 덜 외로워지는 감각이 있다. 그것은 사랑의 중요한 얼굴 중 하나다.


하지만 나는 사랑을 오래 생각할수록, 불편함 없는 사랑을 너무 쉽게 기대하는 일은 관계를 오히려 얕게 만들 수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실제의 사랑은 언제나 나와 다른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감정의 리듬을 가진 사람,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 다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사람, 다른 상처와 다른 두려움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과 진짜로 만난다는 것은 결국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편함은 반드시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신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내 기준 바깥의 사람을 실제로 만나고 있다는 증거일 때도 있다. 내 기대와 다른 반응 앞에서 느끼는 낯섦, 내가 익숙한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상대의 마음 앞에서 느끼는 당혹감, 사랑하면서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답답함. 이런 감정들은 불편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내 안의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제는 우리가 사랑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너무 빨리 잘못으로 해석한다는 데 있다. 상대가 나와 다르게 반응하면 쉽게 서운해지고, 관계가 기대만큼 부드럽게 흘러가지 않으면 금세 불안해진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설명해야 하지, 왜 이 사람은 나와 이렇게 다르지, 왜 사랑인데도 이렇게 편하지만은 않지. 그러다 보면 사랑은 둘 사이에서 살아 움직이는 관계라기보다, 내 기대와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그때 불편함은 함께 지나가야 할 현실이 아니라, 관계가 틀렸다는 증거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아닌 누군가를 정말 만난다는 것은 원래 조금 불편한 일이다. 타인은 언제나 나의 연장선에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나와 같은 방식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같은 무게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으며, 내가 상처라고 느끼는 것 앞에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차이는 관계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계를 현실로 만든다. 사랑이 불편함을 완전히 지워버린 상태만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결국 나와 아주 비슷한 사람, 혹은 나의 기대를 잘 수행해주는 사람만 사랑이라고 부르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오히려 사랑이 깊어질수록 불편함도 함께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만 가까운 관계에서는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차이들이, 사랑이 깊어질수록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더 많은 기대를 품게 되고, 더 자주 실망하게 되며, 더 쉽게 상처받는다. 그 과정 속에서 관계는 부드러운 감정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이해하려는 노력, 기다림, 수정, 때로는 실망을 견디는 힘이 필요해진다. 사랑은 마음의 크기만이 아니라 불편함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자란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불편함이 상처와 폭력, 무례함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견뎌야 할 불편함과 견디지 말아야 할 고통은 분명 다르다. 누군가의 무책임함, 반복되는 무시, 존중의 부재까지 “사랑이니까 원래 불편한 것”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사랑은 사람을 계속 축소시키거나 침묵하게 만드는 관계여서는 안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와는 다른 종류의 불편함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실제로 가까워질 때 피할 수 없는 낯섦, 기대와 현실 사이의 틈, 그리고 그 틈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감정의 노동 말이다.


어쩌면 사랑에서 중요한 것은 불편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불편함을 어떤 태도로 다루는가일 것이다. 나는 이 낯섦 앞에서 상대를 곧바로 잘못된 사람으로 판단하는가, 아니면 아직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가. 내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관계를 서둘러 정리해버리는가, 아니면 무엇이 다르고 왜 다른지 한 번 더 묻는가. 불편함은 관계를 해치는 감정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관계를 더 실제적인 자리로 데려가는 계기일 수도 있다. 사랑은 편안함만으로는 깊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불편한 채로도 도망치지 않는 태도 속에서 조금씩 더 진짜가 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랑받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기를 원한다. 그 말 속에는 사실 이런 뜻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늘 이해하기 쉽고 편안한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내 안에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과 다루기 어려운 결이 있다는 것. 그런데도 누군가가 그런 나를 너무 빨리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다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편안한 부분만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때때로 불편한 부분 앞에서도 그 사람을 한 사람으로 놓치지 않는 일일 수 있다.


불편함 없이 가능한 사랑은 드물다. 아마 그것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의 사람과 실제의 관계는 언제나 약간의 마찰과 약간의 낯섦을 품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찰이 나를 계속 깎아내리느냐, 아니면 서로를 더 현실적으로 만나게 하느냐이다. 사랑 안의 불편함은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사람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이 늘 편안하기만 해야 한다고 믿고 싶지 않다.


오히려 어떤 불편함은 내가 나 자신 바깥의 사람을 실제로 만나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만 움직이지 않는 사람, 내 기대와는 다른 리듬을 가진 사람,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진 사람 앞에서 조금 멈추고, 조금 배우고, 조금 수정하는 일. 사랑은 그런 과정을 통해 내 감정의 확장이 아니라 진짜 만남이 된다.


그러니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합이나 완전한 편안함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불편함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곧바로 실패로 해석하지 않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편안한 날에만 존재하는 감정이 아니라, 낯설고 불편한 순간에도 여전히 한 사람을 함부로 단순화하지 않으려는 태도일 수 있다. 나는 아마 사랑을 그런 식으로 더 오래 배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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