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딤의 이유를 찾던 시절

by dear M

남편에게 철학관 이야기를 전했을 때,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우리… 다시 가보자.” 고 말했다.

그 뒤로 우리는 몇 번을 더 그 좁은 방을 찾았다.


갈 곳 잃은 마음을 그곳에 내려놓듯,
말하지 못한 서러움과 답답함을
조용히 털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막대기를 뽑아 보더니 말했다.

“두 분에게…
열 살 터울의 아들이 하나 있네요.
큰 효자입니다.
당신 무덤 앞에서 그 아들이
슬프게 울고 있어요.”


둘째 계획이 전혀 없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실소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가슴을 조금은 느슨하게 했다.

아마도 그때의 우리는
‘해결책’이 아니라
버티기 위한 이유가 필요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던 시기였다.

남편의 누나들의 소송으로 시작된
예상치 못한 법정 싸움 속에서
우리는 매일 방어해야 했다.


하루의 시작은 변호사 상담이었고,

하루의 끝은 남편이 법정을 오가는 풍경이었다.
그 중간의 짧은 틈새에서
우리는 철학관에 앉아 있었다.
유일하게 우리 이야기를
아무 판단 없이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

그날도 법정으로 향하기 전 잠깐 들른 철학관에서 선생님은 말했다.

“곧 귀인이 나타납니다.
그 사람이 실마리를 풀어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상하게도
그 말은 그날그날 맞아떨어지는 듯 보였다.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마다
희미한 기대를 걸게 만드는 말들을
정확히 골라 내 앞에 놓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해결을 예언한 말이 아니라
그저 버티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마음의 진통제’ 같은 말들이었다.


시간은 흘렀고,
그때 말했던 ‘효자 아들’은 오지 않았다.
지금 우리 딸은 열 살을 훌쩍 넘었지만 아들은 없다.

그저 남편과 나는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릴 뿐이다.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
정신이 부서지지 않기 위해
철학관마저 붙잡아야 했던
그 시절의 우리를.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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