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흔들렸기에 피울 수 있었던 나의 이야기.
아이를 키우며 가장 많이 한 말은
“괜찮아.”였던 것 같다.
처음엔
아이에게 해주던 말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말은
늘 나에게 건네던 말이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도 버티고 있는 나에게
조용히 속삭이던 주문이었다.
나는 늘 흔들렸다.
육아의 중심에서도
교실에서도
누군가의 엄마이자
교사이자
한 사람으로서.
교사로서 아이들을 보며
배우는 일은 많았다.
아이의 가능성을 믿어주는 법,
성장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법.
그런데 그 배움은
때때로
나를 더 완벽하게 만들려는
욕심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글을 잘 쓰는 아이,
발표를 잘하는 아이,
친구를 배려하며
학급 일을 척척 해내는 아이.
나는 이 모든 모습을 내 아이에게서 보고 싶었다.
모두 다른 아이들의 장점을 한 사람 안에 담길 바랐다.
아이를 위해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기꺼이 희생하고,
늘 최선을 다하는 엄마.
그게 좋은 엄마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아이를 위한 사랑이라기보다
‘완벽한 나’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기도 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아이의 학습, 감정, 관계,
하루하루의 일정까지
내가 손 닿는 곳마다 정성을 쏟았다.
그런데 그 최선의 과정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흔들렸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원한 방향으로
상황은 늘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입력하면,
그렇게 출력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내가 설계한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건 오판이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내가 만든 길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존중해 주는
엄마의 믿음이었다.
불안을 견디며 배웠다.
아이의 길을 대신 만들어주는 일보다
그 길을 걸을 때
곁에서 묵묵히 있어주는 일이
더 큰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좋은 엄마가 된다는 건
아이를
내 뜻대로 이끄는 게 아니라,
그 아이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다리는 일이다.
아이가 넘어질 때마다
내미는 손을 준비하지만
그 손이 아이의 발걸음을
대신하지 않도록
언제든 돌아봐도
거기 서 있는 사람,
끝없이 지지하고
믿어주는 엄마가
곁에 있다는 든든함.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제는
‘단단한 나’보다
‘유연한 나’로 살고 싶다.
흔들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삶은 계획대로 피는 꽃이 아니다.
흔들림 끝에 피어나는 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흔들림 속에서 다시 자라고 있다.
나는 오늘도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다시 나를 키운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를 떠올릴 때
완벽한 엄마가 아닌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곁에 있는 엄마’로
기억되길 바란다.
첫 아이의 입시를 처음 치르며,
수많은 생각들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잡고자
나의 이야기를 다시 돌아보았다.
이 글들은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경험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수없이 흔들렸다.
사랑은 늘 옳다고 믿었지만,
그 사랑이 때로는
나의 불안과 욕심을 감추는
가면이기도 했다.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며
마음 졸였던 그 시간 동안
결국
나 자신이 자라고 있었다.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아이를 완벽하게 키우는 일이 아니라
흔들리는 자신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도 다시 피어나는 용기를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기다림을 배웠고,
불안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은 통제가 아니라
신뢰로 완성된다는 것을 배웠다.
이 글을 쓰며 수많은 밤,
나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 시간들이
내 안의 마음 근육을
키워주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통해 글쓰기의 체력을 기른다면,
나는 글쓰기를 통해 '삶의 근육'을 단련하고 있었다.
흔들림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 흔들림 덕분에 내가 자라났다.
이 글은 나의 기록이자
같은 길 위를 걷는 부모에게 건네는
작은 안부다.
오늘도 흔들리며 살아내는
모든 이들에게
조용히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