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나를 키우는 육아
처음 아이를 안았을 때,
나는 이미 어른이고
준비된 부모라고 믿었다.
엄마가 되기 전부터
나는 이미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온
교사였고,
책에 나온 성장 이론과
발달 단계를 줄줄 외울 수 있었다.
'나는 준비된 부모야.'
그렇게 믿으며 아이를 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육아서에는
'영아의 울음은 의사소통의 시작'이라
적혀 있었지만,
밤마다 이어지는 울음 앞에서는
그 문장이 아무 소용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지?'
'나만 부족한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이의 성장만큼이나 나의 성장도 아직 진행 중이라는 걸.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나를 새로 배우는 일이었다.
아이의 성장을 돕기 위해서는
내 안의 감정, 상처, 한계를
마주해야 했다.
화가 나면 왜 화가 나는지,
조급할 때는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아이보다 내가 더 모르는 건
늘 '나 자신'이었다.
아이들에게 불쑥 화를 내는
나를 보면서도
처음엔 '아이 탓'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배가 고플 때 유난히 화를 냈다.
아이의 행동보다,
내 몸의 신호가 먼저였던 거다.
그 후로는
식사를 잘 챙겨 먹는 것도
육아의 중요한 일부로 여기게 됐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할 때면
나는 내 어린 시절을 겹쳐 보곤 했다.
그때의 상처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었기에
딸의 작은 불편함도 크게 느껴졌다.
결국
내가 겪었던 두려움을
아이의 이야기 위에 덧씌운 거였다.
밤새 걱정하고,
마음을 졸였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3학년이 될 때까지
나는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 곁을 지켰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안의 불안은 더 커졌다.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친구와는 잘 지내는지,
하루하루가 시험처럼 느껴졌다.
학부모 모임에 나가
다른 엄마들을 만나면
서로의 이야기가
마치 숙제 목록처럼 들렸다.
"**이는 00 학원 다닌대."
"거기 레벨테스트 안 봤어?"
그때마다 나는
또 다른 과업을 세워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늘 누군가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는 기분이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체구가 또래보다 작았던 아들이
혹시 놀림을 받지는 않을까,
학교에서 힘든 일을 겪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아이는 씩씩했지만,
불안한 건 언제나 나였다.
돌이켜보면
아이의 학교생활을 지켜본 게 아니라,
나의 불안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아이의 "하기 싫어요."라는 한마디에
나의 불안이 요동칠 때도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면
아이가 나를 거부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어느 때에는
억지로 설득하지 않고 그냥 뒀을 때
아이의 표정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아이의 '싫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연습이었다.
아들은 축구를 좋아했다.
경기장에서 골을 넣지 못해
안타까워할 때면
나는 대신 뛰어가 공을 차고,
그 아이 대신 골망을 흔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함께 있어 주되,
대신하지 않는다.
그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깊고 어려운 사랑임을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내가 아이를 키운 게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통해
내 안의 어른이 자라났다.
예전에는
부모가
아이의 길을 비춰주는 등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그 등불은 서로를 비춘다.
내가 비춘 빛이 아이를 비추고,
아이가 비춘 빛이 다시 나를 성장시킨다.
그래서 이제는 완벽한 부모보다
배우는 부모, 자라나는 부모로 살고 싶다.
실수하고 후회하면서도,
그 속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를 통해
나는 내 안의 불완전함을 마주했고,
그 불완전함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오늘도
나는 아이를 키우며,
동시에 나 자신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