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꽃

터줘야 할 길

by 이우현

5월부터 여름꽃들의 새싹이 왕성하게 자라 꽃대를 물기 시작한다. 기온이 평년보다 아무리 추워도 포근해도 차이나 봐야 고작 일주일 이상을 넘기지도 앞서지도 않고 봄꽃들의 세력이 주춤할 딱 그 시기에 맞춰 자기 차례를 아는 듯 꽃대를 무는 걸 보면 당연히 일어날 일에 조급함 따윈 필요 없다는 듯 품위가 느껴지니 실로 부러울 따름이다.


여름에 피어나는 꽃들답게 더위에 강한데 고맙게도 과습으로부터 꽤나 안전해 장마철에 가장 잘 자란다. 꽃농부가 되어서 가장 힘들고 무서운 계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하나의 망설임도 없이 장마철이라고 말하고 싶다.


삼 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는 속담이 있듯이 긴 장마에는 장사 없다고 꽃은 물론 잡초까지 녹이는 무서움을 한번 겪었던 적이 있은 후로는 장마철엔 물고랑을 깊게 파고 해마다 정비를 해줘도 걱정은 사라지질 않는다.



나의 꽃밭에 대표적인 여름꽃인 에키네시아는 이런 초보농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장마에도 끄떡없이 장마를 즐기는 기특한 녀석인데 5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11월까지 꽃을 반복 개화하는 개화기간이 아주 긴 효자꽃이다.


장마철엔 특히나 신경 써줘야 할 것이 물길을 잘 내줘야 하는데 시기에 농부는 게으름을 펴선 안된다. 다른 일을 하려 마음을 뺏겨서도 안될 일이 바로 물길을 내주어 물이 잘 빠져나가게 해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해 피어난 봄꽃의 늘어난 포기를 잃고 여름, 가을꽃은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식물에게도 사람에게도 가장 중요한 건 빠져나가야 할 길을 내주는 일인 것 같다.


처음 식물에게 과습이 오면 겉으로 티가 나질 않는다. 뿌리부터 서서히 썩어 들어가니 약을 쳐주거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그러다 잎을 노랗게 말리고 줄기가 물러 들어간다. 이땐 이미 때는 늦은 시기다. 마치 사람이 우울증에 걸려도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도 식물도 어디가 아프거나 문제가 생기면 표가 바로 나면 좋으련만.. 식물 뿌리도 사람 마음도 눈으로 보이질 않으니.. 잃게 되는 순간에야 알게 되는 것 같다.


식물들에겐 잃기 전에 흙을 만져보며 물 빠짐이 좋게 길을 터줘야 하고 잃기 전에 나와 주위의 사람들에게 작은 관심을 보이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