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적 사회적 합의]로 형성된 [가치저장 수단]
제도권 금융에서만 업무를 해온 입장에서 비트코인의 등장은 상당히 생경한 사건이었습니다. 어떠한 실체도 없고, 그 무엇도 표창하지 않는 개념이 지속적으로 시장가격을 형성해 거래되는 현상을 보며 경계심을 갖게 되었고, 사실 리스크관리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데이터 조각(혹자는 공간이라고 표현)의 실체가 무엇이길래 엄청난 가치(시가총액)를 가지게 된 것일까요?
비트코인은 초기에 시장가격을 형성한 이후 폭발적으로 가격이 상승해 왔기에,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재테크 수단][대박상품]으로 인식되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가격은 움직이는 변수로 보고, 가격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본질을 고찰했습니다. 저에게는 워낙 생경한 경험이었기에 본질을 파악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결국 저의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비트코인은 [암묵적 사회적 합의]로 형성된 [순수한 가치저장 수단]입니다. 비트코인은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며, 일상적인 교환 수단으로 쓰이기에도 한계가 명확합니다. 결국 본질은 인간이 가진 돈을 어딘가에 저장(파킹, 묶어두기) 해 두려는 목적, 그 자체에 있습니다.
가치저장 수단의 대표는 금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종종 금과 비교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금은 오랜 기간(길게 보면 수천 년)에 걸친 인류 합의의 산물인 동시에, 산업 현장에서 쓰이거나 귀금속으로서의 물리적 실체가 있습니다. 반면 비트코인은 그러한 실용적 쓰임새가 전혀 없는, 오직 가치저장만을 위해 존재하는 추상적인 금고입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의 가격은 [사회적 합의]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가치가 있다"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이 현재의 거래 가격을 형성합니다. 이 본질을 이해하면 가격의 움직임도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유동성이 풀리는 저금리 시대에는 가치를 저장하려는 수요가 몰리며 가격이 오르고, 반대의 상황에서는 가격이 내리게 됩니다.
리스크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비트코인이 상당한 오랜 기간 시장 가격을 형성하며 생존해 왔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는 데이터입니다. 이제는 비트코인을 하나의 가치저장 수단으로써 존중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가격은 결국 누군가가 이전보다 최소한 비슷한 가격을 지불하면서 거래를 하면서 매수를 하여야만 가치가 유지되는 구조입니다. 비트코인의 암묵적 사회 합의는 아직 20년 남짓 된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만약 어느 순간 "비트코인이 가치저장 수단으로써 유효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이 공유된다면, 가격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결국 암묵적 사회적 합의가 깨지면 가치는 걷잡을 수 없이 급락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