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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류아 Mar 31. 2019

우린 만났다.

단지 기회가 없었을 뿐(부제: 인재개발과정 동기들에게)

 행사 때문에 모교에 갈 일이 생겼다. 그리고 인재개발과정을 함께 한 동기들이 대거 참여했다. 사전에 카카오톡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행동대장 몇 명 말고는 다들, 말이 없었다.

 행사는 잘 치렀다. 끝나고 연락이 왔다. 학교 앞 주점에 모여 있으니, 서둘러 라는. 

'다들 오랜만이야. 반가워!'

 모임 장소인 술집이 저 멀리 보이자, 발걸음이 더 바빠졌다. 정말 반가운 마음에, 아직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마침내 들어선 가게. 한 사람 한 사람 얼굴 보며 활기차게 말하고 싶었는데 웬걸, 기온 차 때문에 안경에 김이 서려 보이지 않았다. 당황했다. 더듬더듬 헤매는 사이, 동기들이 먼저 날 알아보고 손을 들어 외쳤다.

오.. 여기예요!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에서 포근함을 느끼다. 색감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생각보다 많이 모여 있었다. 그 가게에서는 비교적 큰 테이블인데도, 사람이 많다 보니 옹기종기 웅숭그리듯 앉아 있었다. 장소는 다소 좁았지만, 마음은 넓었다. 면면이 반가운 기색을 물씬 느꼈다. 며칠 전에 본 친구들도 있었지만, 마치 몇 개월만에 본 듯 새로웠다. 오랜만에 오는 장소,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그로부터 풍겨 나오는 분위기 덕분일게다.

 꽤 오랜만에 보는지라 서로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았다. 크게 1. 재학생 2. 휴학생/취준생 3. 직장인 으로 나뉘었다. 그래서일까, 대화 주제가 시시로 바뀌며 다양했다. 재학생이 재학생과, 재학생이 휴학/취준생과, 재학생이 직장인과, 휴학/취준생이 휴학/취준생과, 휴학/취준생이 직장인과, 직장인이 직장인과..

 몇 년 전 함께 인재개발 프로그램을 소화하며 격 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던 그때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흘러간 시간이 놓여있고, 저마다의 삶이 다르기에. 대화 내용도, 생각도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 아니면 그저 나만의 예민함일까?


 나는 술도 마시지 않거니와(*술잔에 따라 마시는 사이다가 그렇게 맛있다.) 4명 이상의 모임에서는 별로 말이 없다. 이 까닭에 주로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관찰했다: 프로그램 최근 현황, 학교 소식, 지역 사건사고, 사회 이슈 등등. 그리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조심스레 접점을 찾아가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정보를 갱신하는 모습.

 즐거워서 한 잔, 이런저런 진지한 고민을 곁들여 기울이는 한 잔. 마주앉아 대화, 옆 사람과 대화. 여기에 앉아 있지만 때로는 저기의 대화에도 참여했다가.. 저기에 앉아 있지만 또 여기에도 참여했다가.. 혹은 전체가 한 사람에게 집중했다가.

 종종 찾아오는 일순의 침묵. 이어지는 권주(勸酒). 요사스럽지 않고 차분히 부딪치는 술잔. 기울이는 술잔 너머로 보이는, 구태여 가장하지 않은, 자기 모습 그대로의 표정들.



이 모든 풍경을 가만히 관조하고 있으니, 윤동주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참 좋아하는 작품이.

모퉁이마다
자애로운 헌 와사등에
불을 켜놓고

손목을 잡으면
다들, 어진 사람들
다들, 어진 사람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돌아들고

「간판 없는 거리」(윤동주) 中 일부

  다들 만나고 보고 싶어하는데, 정작 먼저 연락해서 만남을 갖기는 무언가.. 어렵다. 모두들 제 마음속 군데군데 자애로운 불을 켜놓고도. 손목을 잡으면, 다들, 어진 사람들 인데. 만날 사람은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결국 헤어진다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일 뿐.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돌아든 몇 계절이 지나서야 모일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우린 만났다. 어느덧 시간이 좀 흘러 버렸지만, 기꺼이 만났다. 아무도 강제하지 않았다. 다만 기회가 필요했을 뿐.

 

 미묘하게 달라진 삶. 그래도, 그래서 확인하고픈 동질감.
 잘 살아 있구나. / 잘 살아가는구나.
 보고 싶다 친구야. / 보고 싶었어 친구야.


마지막은, 내가 제의했던 건배사로 마무리 하련다.


만나서 반갑고, 고맙고,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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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독자님께 열려 있습니다 ^^


사진 출처(이하 작가명): http://pixabay.com  

표지 및 마지막: "Pexels"

1번: "Engin_Aky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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