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 세대의 착각

by 한가온
사진 출처_한가온 갤러리 / 장소_속초시 조양로

전라도의 한 도시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창밖 풍경이 빌딩에서 나무로 바뀌는 동안 마음도 함께 느려지는 것 같은 안온함에 저절로 눈이 감겼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앞자리에 앉은 한 아주머니의 통화 때문이었다.
목소리가 컸다. 정말, 놀랄 만큼 컸다. 통화를 엿들을 생각도 없었지만,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통화하는지까지 또렷하게 들렸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데시벨이었다.

딸과의 통화였고, 오랜만에 손주를 보러 가는 길이 참 설렌다는 이야기였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가는데도, 그분의 목소리는 내게 소음이자 공해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매너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베트남 혼혈이라던 친구를 이른바 '튀기'라 부르던 사람, 지하철 좌석에서 일어나며 아무렇지 않게 남의 허벅지를 지지대 삼던 사람, 고개를 돌려가면서까지 지나치게 빤히 쳐다보던 사람까지.

나는 줄곧, 이들을 한데 묶어 ‘기성세대’라고 부르며 기억해 왔다.


한 번은 그들의 행동으로 인한 불쾌감을 차마 감추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토로했었다.

“왜 저럴까, 저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때 내 말을 들은 부모뻘의 누군가가 농담처럼 했던 대답이 떠올랐다.


“자기야, 우린 그런 거 못 배웠잖아.”


그들에게 ‘교육’은 우리 세대가 받아온 교육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을지도 모른다.
잘 살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교육. 배려와 소통의 방식보다, 읽고 쓰고 일하는 법을 먼저 익혀야 했었을 세대.


그리고 또 하나.
젊었을 때는 단번에 알아차리던 자극도 나이가 들수록 늦게 와닿을 수 있다는 점. 청력도, 집중력도, 반응 속도도.

세월은 무쇠도 닳게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몸이 조금씩 느려지는 일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 그렇다는 말을 핑계라며 폄하해 왔던 건 오히려 나였다.


기차 안 아주머니는 아마도, 손주와의 만남이 얼마나 설레고 반가운지 더 또렷하게 들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차의 소음 때문에 딸이 못 들을까 봐, 자연스레 목소리를 커졌을 수도 있다. 그건 그분의 방식대로 건넨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맥락을 지워버리고, 딱 하나만 남겼다.

“예의 없다.”


세월의 흔적인 것을, 혹은 누군가를 향한 정성인 것을,

그저 더 많이 안다는 이유로 오만하게 잘라 말하고 있었던 거다.

그날 목적지에 도착하고서도, 내 방자함을 떠올리니 종일 부끄러웠다.

기차에서 내린 건 발이었는데, 정작 내려야 했던 건 내 태도였다.


아주머니가 예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나는 그분이 누구인지 알기도 전에, 먼저 판단부터 내리는 사람이었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판단을 조금 늦추기로 했다.
‘매너 없다’고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의 사정이 한 줄쯤 더 있을지 헤아려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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