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나보다 훨씬 어린 20대의 신규 선생님을 만났다.
일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1년 남짓 된 사람이다.
지난 1년 간 어땠냐고 물어보자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힘들었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년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다고 했다.
말투는 조심스러웠지만, 그의 말에는 조급함이 없었다. 이상할 만큼 담담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늘 조금 늦었다.
전공을 선택하는 일도, 이후의 진로를 결정하는 일도 그랬다.
또래들보다 호봉이 낮은 이유도 결국 그 탓이다.
친구들은 아이 개월 수에 맞는 이유식을 이야기하고,
곧 입학할 어린이집을 알아보느라 분주한데
나는 아직 혼자다.
그래서인지 '느리다'는 감각은 오래전부터 나를 따라다녔다.
이 감각이 '불안'과 '공포'로 이어진 데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도 한몫했을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1년 즈음 지났을 무렵, 아르바이트를 하며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을 통해 은사님이 곧 퇴직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그 반 친구들이 모여 작게나마 인사를 드리려 한다는 말도 함께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이야기를 집에 전했고, 엄마는 말이 끝나자마자 내게 말했다.
"너는 가면 안 되겠다."
말의 의도를 몰랐던 건 아니지만, 괜히 자존심이 상해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자리에 가기엔, 내가 하는 일이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또 한 번은 혼자 여행을 다니는 재미에 빠져 있던 시절이었다.
다음엔 서유럽을 가겠다고 하자 엄마는 허공에 대고 푸념했다.
"다른 애들은 다 결혼해서 같이들 다니는데, 얘는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붙잡고 있던 도태의 불안과 공포는 세상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실망을 더 이상 키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것들이 뒤엉켜 '느림'으로 내 안에 남아 있었던 건 아닐까.
어제 만난 그 선생님의 말이 마음에 남았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직 무언가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늦어질까 봐 서두르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은 이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빠르지 않다.
아마 앞으로도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계속 늦은 쪽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느림이 곧 실패라는 생각에서 조금씩 내려오고 있다.
느린 사람에게 필요한 건 빠르게 달리는 힘이 아니라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힘이라는 걸
이제야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