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면 고민이 하나 생긴다. 12월 31일에는 무엇을 하며 보내야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
누구는 해외여행을 간다고 했고, 또 누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러 보신각에 간다고 했다.
졸업을 앞둔 제자들은 끼리끼리 모여 열두 시가 되자마자 맥주를 마시러 갈 거라며 천진하게 웃었다.
언제부턴가 나에게 그날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놓은 것도, 일 년을 365일로 조각내어 놓은 것도 결국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단위라고 생각한다면, 12월 31일과 1월 1일 역시 그저 하루가 지나 다음날이 되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서다.
평소처럼 요가 수업에 갔다. 내일 신년인데 뭐 하실 건가요, 라고 묻는(사실 진정 궁금해서 묻는 말은 아닐 거다) 강사님의 질문에 한 수강생은 동네 뒷산으로 일출을 보러 가겠다고 답했다. 그곳에 가면 떡국을 나누어준다고도 했다. 해외여행이니, 타종 행사니 하는 유난스러운 계획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동네 뒷산으로 떡국 먹으러 간다는 그 말은 이상하게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그냥 그걸, 내 신년 계획으로 삼았다.
일출 시간은 오전 7시 43분. 7시 정각에 집을 나서 산에 올랐다.
매일 뜨는 해, 그거 뭐 대단하다고 쉬는 날 산까지 올라 '일출 스팟'이라는 곳에 자리 잡고 앉은 내 모습이 우스웠지만, 이왕 '새해'라는 의미를 부여한 바 남들처럼 소원이나 빌고 가자 싶었다.
구름이 짙게 져 둥근 해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는 걸 보며 해가 떴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해를 향해 소원을 빌었다.
'우리 가족 다 평온하고, 무탈히 지내게 해 주세요.'
산을 내려오는 길,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떡국을 먹으러 오라고.
원래대로라면 집으로 곧장 돌아가 잠을 더 자야만 했다. 그렇지만 난 불과 5분 전 '평온'을 소원으로 빌었던 사람이 아닌가. 해서 군말 없이 본가로 갔다. '우리 가족의 평온'을 위해.
본가 현관 앞에서부터 웬 소음이 들렸다. 엄마와 아빠가 째끄락거리는 소리라는 걸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아빠는 엄마가 왜 이리 성질이 급한지 모르겠다며, 엄마는 아빠가 왜 이리 미적거리는지 모르겠다면서. 여느 때처럼, 그러니까 작년 12월 31일과 다르지 않게 다투고 있었다.
장녀는 습관처럼 부부의 다툼에 참전했다. 말리고 싶었던 건데, 장녀들은 일단 제 부모를 혼꾸녕내는 말투가 기본값이다 보니 이제는 3인의 싸움이 된 것이다.
아침잠 마다하고 가족의 평화를 빌겠다며 등산까지 했건만, 단숨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간다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더라.
새해의 다짐이, 또 마음가짐이 누군가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지도 않더라.
그래도 이상하게, 사람은 안 바뀐다는 걸 알면서도
바뀌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또 한 해를 새로 산다.
비록 해가 보이지 않아도, 해가 떠오른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하지 않듯이.